내가 무슨 꿈 꿨는지 알아?
—아내에게
간밤에 꾼 꿈 이야기입니다.
남주는 당연히 저고요 여주는 꿈속에서 여자 배우였던 것 같아요. 조연들도 있었는데 기억은 안 나요.
우리는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었던가, 악마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하여튼 그런 쓸데없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괴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귀신인가 악마한테 위협당해서 다들 공포 속에 살고 있었어요. 어떻게 무찔러야 하는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사랑은 꽃 피는 법. 여주가 갑자기 저를 어디론가 끌고 가더니 옷을 홀라당 벗고 적극적으로 유혹합니다. 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저도 옷을 하나씩 벗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여주를 보고만 있었던 것도 같고,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순간에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온몸이 짜릿했던 감각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상에 이게 웬 떡이야.
근데…… 제가 막판에 가서 뭘 했는지 아세요? 여주한테 달려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돼, 난 아내가 있는 몸이야!”라면서 밀치고 돌아섰어요!
아이고, 이 미친 새끼. 그런 건 현실에서만 잘 지키면 되지, 뭘 꿈에서까지 지켜! 꿈에서는 좀 즐겨도 되잖아.
그렇게 저의 불장난은 허탈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분하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한테 이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 왈, “밤에 오빠가 자면서 으… 으… 하길래 악몽 꾸는 줄 알고 손 올려줬어. 그랬더니 잘 자더라.”
그랬어요. 제가 꿈속에서 미련한 행동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한마디 해줬습니다.
“왜 남의 꿈을 함부로 판단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