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Jan 28. 2018

역자 교정의 맛

지난 목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라고 며칠부터 공지가 있었다. 전기가 안 들어오면 보일러가 안 돌아가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은 물도 전기 펌프로 끌어 올리는 거라 안 나왔다고 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전기가 끊기면 컴퓨터를 못 쓰고, 컴퓨터를 못 쓰면 일을 못 하니까 오후에 영화나 한 편 보고 와야지, 라고 며칠 전부터 땡땡이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음모를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그 전날 출판사에서 역자 교정을 요청해 왔다. 넉넉히 주말이나 다음주 초까지 시간을 주긴 했지만 이건 뭐, 일하라는 하늘의 계시지.


그래서 목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교정을 보고 오후에는 노트북을 싸 들고 카페에 갔다. 그런데 집을 나와서 한참 걷다가 생각해 보니 어차피 노트북으로 할 거면 집에서 해도 되잖아? 보일러 몇 시간 안 돌아간다고 집이 냉골이 될 것도 아니고. 게다가 하필이면 그날이 한파가 최고조에 이른 날이라서 바깥 날씨가 춥기는 무지하게 추웠다. 거기다 집 근처에 마땅한 카페가 없어서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자가용은 바깥양반(=아내)이 끌고 다니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우리 집은 말이 혁신도시지 사실상 변두리라 버스가 꼭 오늘 온다던 택배 아저씨처럼 안 온다. 그래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먼 카페까지 나갔다.


그렇다고 내가 카페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집에서 널찍한 27인치 화면으로 일하다가 13인치 화면을 보면 일할 맛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소리에 좀 민감한 편이라 사람들의 말소리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안 그래도 그날은 옆 테이블에 앉은 아줌마 한 명이 말투를 들어보니 종교나 보험회사의 '포섭책'이랄까, 약간 ‘사짜’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내 주의를 빼앗아 갔다. 말이 시원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고 토막토막 들리니까 감칠맛이 나서 더더 귀가 기울여졌다.


그래도 일을 하러 왔으니 일을 해야지. 역자 교정이라고 하면 종이 출력물을 우편으로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릴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PDF 파일이 오간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PDF 파일에 주석 기능으로 수정할 내용을 표시해서 다시 돌려보내는 식이다.


그리고 또 역자 교정이라고 하면 번역 원고의 곳곳에 빨간 펜으로 고친 부분이 표시되어 있어서 그것만 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번역가가 받는 교정쇄는 아래 사진과 같이 이미 편집과 디자인이 거의 다 끝나서 바로 출간해도 별로 무리가 없을 정도의 편집본이다.


저작권을 존중해 흐릿한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보면 알겠지만 번역 원고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바꿨다는 표시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서 혹시 편집 과정에서 문장의 의미가 바뀐 곳은 없는지, 그리고 내가 혹시 오역한 부분은 없는지 잘 찾아봐야 한다.


아무 표시도 없는데 그게 될까? 더욱이 역자 교정을 보는 시점은 아무리 일러도 번역 원고를 보내고 두어 달이 흐른 후인데? 그런데 된다. 읽다 보면 어, 여기는 원래 이런 뜻이 아닌데, 내지는 흠, 뭔가 찜찜한데, 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그래서 번역 원고나 원문과 대조해 보면 수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문장을 대조해보지 않는 한 내가 놓치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굵직굵직한 놈들은 다 잡힌다.


한편으로 역자 교정의 묘미는 종종 “신이여, 이 문장을 진정 제가 번역했습니까?”라고 물을 만큼 감탄스러운 문장을 마주하는 것이다. 번역문 중에는 원문이 보이는 번역문과 아예 원문이 감도 잡히지 않는 번역문이 있다. 원문이 보인다는 건 번역문만 봐도 원문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지, 더 나아간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로 되어 있을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이런 번역문은 직역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반대가 원문이 무엇이었을지 암만 추리를 해보려고 해도 안 될 만큼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것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는 번역문이다(참고로 어느 한쪽이 무조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하필이면 그의 전용기가 나 몰라라 하고 뻗어버렸다.


사실 이건 그냥 재치 있는 번역 수준이고 정말 내가 봐도 유려한 문장들이 있지만(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여하튼 이 문장의 원문이 짐작이 가시는지? (혹시 짐작이 가더라도 내 체면을 생각해서 모른 척 해주시길.) 원문은 이렇다.


his Boeing’s engine had the gall to malfunction.


어떻습니까? “뭐, 번역가라고 명함 내밀 수준은 되네”라고 할 수준은 되죠?


이런 표현은 내가 쓴 것일 때도 있고 편집자가 쓴 것일 때도 있다. 그래서 확인 차 내가 보낸 원고를 한번 찾아본다. 어느 쪽이든 좋다. 설사 편집자가 실력을 발휘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그런 내막을 모르는 독자는 번역가의 솜씨라고 생각할 테니까 나한테 이득이다. 참고로 이 문장의 경우, 원래 내가 보낸 문장은 이렇다.


하필이면 전용기로 쓰는 보잉기의 엔진이 나 몰라라 하고 뻗어버린 것이었다.


편집 과정에서 문장이 좀 압축됐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번역가의 입장에서 원문의 정보를 최대한 살려서 문장을 쓰고 편집자는 시장 상황이나 목표 독자의 성향 등을 고려해 군살 제거 시술을 한다. 원문의 의미를 해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가독성 내지 경제성을 고려한 편집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편집의 영역이니까 번역가인 나는 그런 판단을 되도록 배제하고 원문을 최대한 살려 번역한다.


이렇게 고칠 놈들 고치고 감탄할 놈들 감탄하면서 역자 교정을 끝내고 나면 그래도 내가 번역가로서 쓸만 하구나, 하는 자부심 내지 자만심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교정쇄를 볼 때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번역을 끝낸 지 두어 달 이상이 지난 시점이라 번역문과 거리를 두고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봐도 문장이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편집을 거치고 보기 좋게 디자인까지 되어 있으니까 번역 중에 읽었을 때보다 한결 좋아 보인다.


그래서 역자 교정을 마치면 늘 뿌듯하다. 단,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고 금전적으로 보자면 역자 교정은 하면 할수록 손해다. 따로 수고비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하루 동안 역자 교정을 보면 하루치 임금을 날리는 셈이 된다. 물론 애초에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서 번역료를 책정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그래도 역자 교정은 기왕이면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역서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믿고 쓰는(혹은 보는) 번역가’가 되면 오늘 못 번 푼돈이 나중에 떼돈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이게 다 내 꿈인 돈 많은 자발적 백수가 되기 위한 투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번역가라고 다 쏼라쏼라하진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