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두 군데서 의뢰가 들어왔다. 하나는 지금까지 같이 작업해본 적 없는 출판사였는데 내가 아는 분의 추천으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만 좋다면 바로 일을 맡기겠다고 하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면 어이쿠,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 덥썩 일을 받으면 될 것을 굳이 토를 달았다.
-혹시 원하시면 제가 샘플 번역을 보내드릴 테니까 일단 한번 보시고 결정하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휴, 그래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또 다른 의뢰는 뜻밖에도 브런치 댓글을 통해 들어왔다. 개인적인 글이었는데 나는 원래 출판 번역 외의 일은 받지 않지만 배경 설명을 듣고 보니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더욱이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서 번역 비용과 기간을 안내하고…… 딱 거기서 끝냈으면 좋을 텐데 또 괜히 한마디 덧붙였다. 일단 한두 문단 보내주시면 샘플 보내 드릴테니까 보고 결정하시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일이 들어왔으면 “좋습니다, 어서 배에 타시죠” 하고 등을 떠밀어도 모자를 판에 “잠깐만요, 섣불리 타지 마시고 일단 제 노질을 한번 보시죠”라고 사족을 달 게 뭔가.
구태여 샘플을 받아보라고 하는 이유는 우선 내가 안전제일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뭐든 위험한 일은 피해야 한다. 번역에서 내가 피하고 싶은 위험이라면 나중에 출판사에서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항의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애초에 내 번역 스타일을 보여주고 결정을 맡기는 게 마음 편하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지극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이 나한테 폐 끼치는 것도 싫지만 내가 남한테 폐 끼치는 건 더더욱 싫다. 그래서 내 번역 때문에 의뢰인이 번역료는 번역료 대로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원고 고친다고 몸고생, 마음고생 하는 상황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와 처음 작업하는 출판사는 거의 예외 없이 내 샘플을 받아보고 결정했다. 그래서인지 10년 동안 번역을 하면서 출판사에서 번역에 대한 항의가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에이전시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출판사에서 미리 샘플을 받아서 내 스타일을 확인하고 결정했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계약 후 본격적으로 번역할 때 들이는 공력이 10이라면 샘플 번역에는 8 정도의 힘만 싣는다. 샘플을 너무 잘했다가 실제 번역 원고가 그것보다 못하면 이 역시 내 안전제일주의와 민폐극혐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차라리 샘플이 떨어지고 “크큭, 그것은 나의 풀파워가 아니었다!”라고 자위하는 편이 낫지.
샘플 번역은 의뢰인이 번역가의 스타일을 미리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번역가의 입장에서도 과연 그 책의 문장이 내 번역 스타일과 맞는지 가늠해볼 기회가 된다. 원문과 나의 상성은 그냥 읽어보기만 해서는 모르고 직접 번역으로 부딪혀봐야 안다. 읽을 땐 잘 읽혀도 막상 번역을 해보면 도무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안 나오는 책들이 있다. 내 번역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 번역 스타일이 어떤가 하면…… 나는 문장을 좀 곧이곧대로 옮기는 편이다. 이건 내가 다닌 번역대학원의 학풍과 관련이 있다(사실 ‘학풍’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역사가 유구한 과도 아니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가 돈벌이용으로 운영하는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지원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과이긴 했지만 뭐 어쨌든). 나는 2008년 1월에 번역 일을 시작하고 그해 3월에 대학원에 들어갔으니 대학원이 일찍이 내 번역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2년 반 동안 “원문에 있는 정보 빼지 말고, 없는 정보 넣지 말고, 문장을 함부로 자르지도 말고 붙이지도 말라”는 번역론에 입각해 번역을 하고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교수님과 공동으로 몇 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꾸준히 이 번역론에 따라 내 번역을 검열했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공동 번역 작업은 내가 한 챕터씩 번역해서 넘기면 교수님이 모든 문장을 원문과 대조해 빨간 글씨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첨삭지를 보내고, 그러면 내가 첨삭 내용 대로 번역 파일을 수정해서 다시 교수님에게 보내고, 그러면 교수님과 다른 팀원들이 다시 퇴고를 거쳐 최종적으로 출판사에 보내는 스타르타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 번역론이 내 몸에 뱄다.
그래서 나는 번역가로서 원문에 개입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예컨대 “선생님이 물었다”라는 원문을 “선생님이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라고 옮기는 게 그 문맥에서 읽는 맛이 더 좋다고 해보자. 여기서 ‘어쩐 일이냐고’는 원문에 없는 정보다. 앞뒤 문맥으로 봤을 때 원작자가 비록 이 정보를 문장에 쓰진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을 확률이 80퍼센트 정도 된다면(물론 이렇게 정확한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어떻게 할까? 나는 그렇지 않을 확률 20퍼센트를 생각해 문장이 좀 부자연스럽게 읽히더라도 그대로 놔두는 편이다.
이건 번역가로서 원문을 절대적으로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창작자로서 한국어 문장의 묘미를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당연히 내가 작가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모든 정보가 내 머릿속에 있으니 문장을 가감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와 별개인 번역가이기 때문에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데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이 오역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것도 영어로 더 맛깔나게 읽히는 문장을 만들고 싶은 창작자로서 욕구가 지나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물론 번역 당시에 그가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역시 이유가 될 것이다). 모든 언어쌍이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번역하는 한국어와 영어를 놓고 보자면 두 언어 간에 문장을 쓰는 방식이 워낙 다르다 보니 원문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빈틈이 한국어로 옮기자면 갑자기 커져 보이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이 틈을 어떻게 메울까 하는 것이 모든 번역가의 고민이고 스미스의 경우에는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원문절대주의’보다 ‘번역유미주의’ 쪽으로 많이 치우쳤던 게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지만.
물론 나라고 원문을 토씨 하나까지 다 살려서 번역하진 않는다. 가끔 내 추측을 개입시킬 때도 있고 문장을 자르는 것은 문학 작품이 아니라면 우리말 문장의 가독성을 고려해 적잖이 하는 편이다. 원문절대주의 8, 번역유미주의 2 정도 될까. 그 비율이 어느 정도면 적당한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그 비율이 몇 대 몇이냐를 떠나서 최대한 오역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샘플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하면 출판사 의뢰는 합격이었다. 샘플을 보내고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을 못 받아서 어떻게 된 일인가 문의했더니 출판사 쪽에서는 다른 일이 워낙 바쁜 것도 있고 또 처음부터 이미 내게 일을 맡기겠다는 뜻을 확실히 전달한 만큼 샘플이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따로 연락이 없었던 것이고, 내 쪽에서는 내가 일단 샘플을 보고 결정하라고 했으니까 출판사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린 뒤 연락을 주리라고 생각해서 기다린 것이었다. 출판사에서는 그런 경위를 설명하며 번역유미주의를 1 정도로 낮춰 달라는 피드백을 줬다. 물론 그런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개인 의뢰의 경우에는 문장의 의미는 잘 포착했지만 문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안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나 역시 번역을 하면서 내 번역 스타일로는 문장이 잘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랬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건 원문을 못 썼다는 게 아니라 두 언어간 차이와 내 번역 스타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일 뿐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 한 선배 번역가가 자신은 경력이 제법 있는데도 여전히 출판사에서 샘플을 요청하니까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 실력을 믿지 못해서 테스트를 하는 것 같으니까 섭섭할 만도 하다. 나도 그때는 언제쯤 샘플을 안 하게 될 날이 올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쪽에서 먼저 샘플 번역을 제안하다니 참 사서 고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