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번역가의 공부 습관 (16)
어릴 때부터 많이 들은 말이죠? 멍하니 텔레비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보가 되니까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는 조언 내지는 질타입니다. 하지만 생전에 저희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텔레비전 안에 세상이 있어.”
저는 할머니 말씀에 동의합니다. 텔레비전도 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유익할 수 있어요. 이건 제가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영상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예, 저는 방송, 영화, 게임을 무척 좋아해요. 거실에 있는 65인치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영화는 혼자서도 보러 다니고, 게임은 집에 게임기만 2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영상물에서 세상 사람들이 쓰는 다채로운 표현을 배웁니다. 영상 매체가 활자 매체와 다른 점은 입말,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에 대화할 때 쓰는 말이 중심이 된다는 겁니다. 책은 글말을 많이 쓰죠. 격식 있고 정제된 표현이 많이 나와요. 가령, 이 가령이란 말만 해도 주로 글에서만 쓰는 말이죠. 평소에 말하면서 쓰진 않잖아요?
글말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글말만 쓰면 글이 재미가 없어지고 생기가 떨어져요. 입말을 적재적소에 넣어줘야 읽는 맛이 삽니다. 예를 들어 ‘even’을 무조건 ‘심지어’라고만 옮기지 말고 ‘한 술 더 떠서’, ‘심하면’처럼 평소 말할 때 쓰는 말로도 번역하면 글이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납니다.
그렇게 우리 입에 착 붙는 표현을 저는 주로 예능 프로에서 건집니다. 예능 선배들이 초보에게 하는 말이 “말할 차례를 기다리지 말라”는 겁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영영 말을 못 하니까 앞뒤 재지 말고 일단 치고 들어오란 거죠. 그러자면 말을 다듬고 정리할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야 해요. 그러니까 걸러지지 않고 날것 같은 표현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예능을 보면 책만 읽어서는 기를 수 없는 언어 감각이 길러지죠.
거기다 예능은 온갖 말장난이 난무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갖고 노는지 보면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를 조합했을 때 이색적인 느낌이 들고,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가 서로 발음이 비슷하고, 어떤 단어를 어떻게 바꾸면 미묘하게 의미가 달라지는지 등 어휘를 더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쌓입니다.
실제로 예능을 즐겨 보는 게 번역에 도움이 된 예를 이야기해볼게요.
기존에 있던 뒷부분은 곧 출간될 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20년 4월 11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