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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Dec 18. 2019

나의 장례식에 대하여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맏사위인 내가 상주로 빈소를 지켰다.


40년이 조금 안 되게 살면서 상주로 치른 상만 3번이다. 열여덟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서른다섯에 할머니가, 서른여덟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이 정도면 장례식에 대해 몇 마디 한들 마흔도 안 된 놈이 뭘 알고 지껄이냐는 말은 안 들을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례식은 슬프다. 아무리 조문객이 밤새 고스톱을 치며 소란을 피운들 잔잔한 호수에 떨어지는 조약돌이 기껏해야 작은 파문만 일으키고 가라앉는 것처럼 무겁게 깔린 슬픔을 깨트리진 못한다.


왜 슬플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고인이 안쓰러워서. 세상에 호강하고 장수하다 가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말년에 병으로든 가난으로든 무엇으로든 고생하다 가고, 일흔도 안 된 이른 나이에 가는 사람도 많다. 우리 아버지는 50대 중반에 불의의 사고로 홀어머니와 처자식에게 작별 인사도 못 하고 갔고, 우리 할머니는 아들 먼저 보내고 십수 년을 요양원에서 쓸쓸히 살다 갔다. 장인어른도 병과 사고로 십수 년을 병상에서 보내다 돌아가셨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애석한 사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둘째, 고인의 빈자리가 안타까워서. 원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길든 짧든 인생의 한때를 공유했던 사람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게 됐다면 슬픈 게 당연하다. 그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하고 더 자주 찾지 않은 게 미안하고 한스러워 그저 눈물만 난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게 사람 마음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죽음을 생각했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늘 내 무의식의 한 편에 앉아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다만 이제 그것은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 내 삶에 어떤 파괴적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죽음과 함께 간혹 생각하는 것은 내 장례식이다. 내 장례식 풍경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빈소에는 생전의 내가 환하게 웃는 사진이 세워져 있다. 음악은 장송곡 대신 경쾌한 왈츠, 혹은 잔잔하지만 낙천적인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절이든 목인사든 나름의 예를 갖춰 사진 속의 나에게 인사한다.


접객실로 나가면 결혼식장의 포토 테이블처럼 탁자 위에 내 사진이 올려져 있다. 모두 생전의 내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진이다. 그리고 스크린에서는 역시 결혼식의 식전 영상처럼 내가 행복하게 보낸 순간이 연속으로 펼쳐진다. 사람들은 사진과 영상을 보고 나와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을 추억하며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든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형적인 장례식과 정반대되는 풍경이다. 누구도 울지 않고 환히 웃는 장례식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까? 안 될 것도 없지.


장례식이 슬픈 이유를 뒤집을 수만 있다면 유쾌한 장례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야, 저 양반, 내가 진작부터 언제 가나 했는데 진짜 질기게도 살다 갔다, 저만 하면 누릴 거 다 누렸지”라고 말할 정도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오래 살아야 한다. 이른 죽음은 그 자체로 슬프다. ‘호상’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평균 수명 이상은 살아야 한다. 나로 말하자면 일단 현재 계획은 100살까지 사는 것이다. 이것은 평균 수명에 스무 살쯤 더한 것으로, 앞으로 평균 수명이 더 늘어난다면 나의 계획 수명 역시 늘어날 것이다.


한데 오래 산다고 다가 아니다. 오래 살되 고생 안 하고 살아야 보내는 사람도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다. 고생을 안 하려면 첫째, 죽을 때까지 큰병 없이 건강해야 한다. 유병장수라고 잔병 좀 있는 것은 괜찮지만 몹쓸 병에 걸려 골골대면 장수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아야 한다. 안빈낙도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저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고 나 같은 속물은 어느 정도 재력이 보장돼야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셋째, 자식들이 건강히 잘 살아야 한다. 자식 먼저 보낸 부모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다. 내가 아무리 잘돼도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로서 그 마음이 마음일까.


이게 내가 생각하는 유쾌한 장례식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거 운발이 제법 크게 작용한다. 막말로 수명도 운발, 경제력도 운발, 자식 농사도 운발이다. 재수가 없으면 건강하려고 헬스장 가다가 차에 치어 죽을 수도 있는 거다. 재수가 좋으면 평생 술담배 끼고 살아도 장수하는 거고.


다만 나는 내가 어떤 운을 타고 났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운의 지배력이 얼마든 간에 노력으로 어찌 해 볼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게 주어진 운을 망치지 않도록 노력할 수는 있다. 말하자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고, 자식에게 열과 성을 쏟는 것으로 내 운이 더 나빠지진 않도록 내 운을 내게 주어진 한에서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나, 노력 여하에 따라 운이 달라질 여지가 있을지도.


그러니까 착실히 살아야겠다. 아직 살 날이 60년도 더 남았는데 그 긴 세월을 잘 살려면 성실히 인생을 쌓아올려야 한다. 그렇게 인생 근육을 길러놓아야 만에 하나 운발이 내 공든 탑을 무너뜨려도 다시 일어나서 탑을 쌓을 수 있다. 아니, 운발이 무너뜨리려 할 때 운발의 멱살을 잡아 메다꽂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야 운발과 사이 좋게 지내고 싶고 운발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지금 나는 방황하고 있다. 나는 착실히 살고 싶지 않은데 결론이 착실히 살아야 한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 따위 결론을 내려고 이 밤에 글을 쓰고 있나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일단은 착실히 살아야겠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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