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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Dec 25. 2019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가 안 돼

“너무 울면 고인이 마음 편히 못 떠나십니다.”


장인어른의 입관식 때 장례 지도사가 그랬다. 유교 전통에서는 그렇단다.


하지만 아내는 펑펑 울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울었다.


원래 울음이 많은 사람이다. 드라마나 웹툰을 보다가도 눈물을 훔친다. 그러니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어떻게 눈물 찔끔 흘리고 말 수 있을까. 아마 그날 아내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내를 말렸다. 말려지지 않지만 말렸다. 정말로 유족이 울면 고인의 발걸음이 안 떼지는 걸까?


나는 그때 장인어른이 담담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는 홀가분하게 떠나시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얼굴에는 슬픔도 미련도 없었다. 그저 잘살라고, 나중에 만나자고, 말없이 말하는 눈빛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었으나 아내의 오열이 장인어른의 떠나는 길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슬프면 울어야 한다. 억지로 참는다고 울음이 사라지진 않는다.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다른 형태로라도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울 때 울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정작 평소에 잘 울지 않는다. 감수성이 그리 풍부한 사람은 아니다. 아내의 마음이 때때로 큰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라면 내 마음은 세면대에 담긴 물이다. 출렁여봤자 세면대 안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엉엉 운 건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운 건 2009년 <그랜 토리노>의 엔딩 장면에서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울음의 가치를 아는 건 그래도 울만큼 울어봤기 때문이다. 20대 때 아직 내게 일요일이 주일이던 시절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거의 매주 예배 때 통성 기도를 했다. 통성 기도란 각자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하는 기도다. 그냥 읊조리는 수준이 아니라 우렁차게, 삘 받으면, 아니, 이런 불경한 말을, 성령이 충만해지면 울부짖듯이 기도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한다.


누가 들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두의 기도 소리에 목사님의 마이크 소리와 찬양 반주가 섞여서 일부러 집중해서 듣지 않는 한 남의 기도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분위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나도 그 시간을 요긴하게 이용했다. 필요하면 새벽 기도까지 나가서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속이 뻥 뚫렸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도, 다시 또 문제의 한복판에 서게 될지라도 그 순간에는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고 홀가분해졌다.


어쩌면 이런 울음의 미학이 그간 한국에서 개신교가 급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괴로울 때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는가. 장례식장에서조차 울음을 자제하라고 할 정도면 말 다했지.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장례식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한 것이었다. 그땐 참 독실하기도 했지. 지금이야 일요일은 종일 집에 퍼질러져 있는 날이지만.


쓸데없는 고민까지 짊어지고 살면서 힘들어도 내색 안 하는 답답한 성격이었던 내가 청년기를 그래도 멀쩡히 보낸 건 교회에서든 골방에서든 울며 기도한 게 컸다.


어떤 종교를 찬양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병적인 울음이 아닌 한 울음은 마음에 좋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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