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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19. 2020

걸인을 지나치며

지난 일요일에 시내/중앙통/구도심에 나갔다. 스타벅스에 가고 싶은데 차는 처가에 두고 와서 버스를 타고 갈 만한 곳 중에서 제일 만만한 게 그쪽이었다. 집 앞에도 카페가 있지만 널찍하면서도 적당히 번화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굳이 스타벅스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중년 남자였다. 거리의 걸인. 예전에 서울 살 때 자주 보던 풍경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울은 길에도 지하철에도 구걸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혹은 술집에 앉아 있으면 불쑥 다가와서 500원짜리 껌 한 통을 2,000원에 사 달라고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대전으로 내려간 후에는 그런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그 규모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아서, 그리고 여기가 중심가다, 라고 할 만큼 사람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이 없는 도시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곳 진주에 와서도 걸인이나 노숙인을 못 봤다. 내가 지금 사는 신도시 위주로만 다녀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거리의 걸인은 몇 년 만에 보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였다.


예전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김없이 주머니나 지갑을 뒤져 동전이든 지폐든 꺼내 줬다. 아, 어김없이는 아니지. 1일 1회, 최대 2회에 한해서 그랬다. 서울은 하루에도 걸인을 몇 명이나 만날 수 있는 곳이니 보는 족족 돈을 주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남들에 비해서는 지갑을 잘 여는 편이었다.


그런 선행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짓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솔직히 나도 그런 의구심이 없진 않았다. 내가 걸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그게 일종의 직업일지도 몰랐다. 저녁이면 안락한 집으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큰돈을 준 것도 아니고 고작 500원, 1000원인데 좀 속았다고 한들 무슨 대수랴.


그리고 적선을 할 때 내 마음속에는 항상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라는 성경 말씀이 맴돌았다. 나는 그것이 내가 예수님에게 드리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내 돈이 거짓말쟁이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해도 예수님이 내 성의는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적선에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선한 장면이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종각역사에서 영풍문고를 나와서 개찰 구로 가는 길목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벽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도 같고 바구니를 앞에 놓고 있었던 것도 같은데 빨간색 고운 스웨터와 무성한 백발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서 그 손 위에였는지, 바구니에였는지 조심히 놓았다. 그냥 떨어뜨리는 건 무례하고 그렇다고 내 손이 닿는 건 싫으니까 적당히 공손하면서도 거리감 있게.


그러고서 돌아서려는 순간, 할머니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발 사이의 정수리가 방금 코가 있던 자리로 갈 만큼 깊이 꾸벅. 마치 동화 속에서 거지가 적선하는 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듯이.


당혹스러웠다. 고작 500원을 건네고 나보다 나이가 3배는 더 많을 어르신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다니. 그냥 고맙다고만 말했으면 차라리 나았을걸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서글펐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달랑 500원에.


저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친구들 만나서 저녁으로 몇만 원을 쓴 게 잘한 짓인가 싶었다. 지 배 채우는 데는 몇만 원 쓰고 남의 배 채우라고는 빵 하나 사 먹기도 어려운 500원짜리 동전 하나 주는 게 과연 옳은가.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나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배 부르게 잘사는 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그런 현실에 내 책임도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라면 죄책감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그래서 작은 돈이나마 적극적으로 적선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일요일, 나는 구걸하는 남자를 그냥 지나쳤다. 돌아오는 길에도 무심히 지나갔다. 지갑을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들의 가난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막말로 내가 그들의 돈을 빼앗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누려야 할 기회를 빼앗은 것도 아니다. 나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악랄한 수법으로 남들을 착취해 돈을 번 것도 아니다.


그들의 가난이 무조건 그들의 책임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야 모르지. 말했다시피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그 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나와 그들이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이란 것만 알 뿐이다.


그들을 구제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국가다. 그러라고 세금 꼬박꼬박 내잖아.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면 찬성이다. 어차피 많이 못 벌어서 많이 내지도 않는데 뭐 큰 차이 있겠을까만은.


나는 세금을 낸 것으로 내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한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 세상 모든 사람이 한 식구라는 사해동포주의, 이제 나는 모른다. 이상적 가치로서 존중은 하지만 내 인생에서 구현은 못 하겠다. 그런 가치관은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보면 필연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나는 이제 죄책감이 지겹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평소에 걱정 많고 고민 많은 성격인데 거기다 양심의 가책까지 얹고 살라니, 싫다.


이기적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어떤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이타적으로 살 수 있으면야 좋겠지만 그건 안 되니까 이기적이되 남한테 해 안 끼치고 살면 칭찬받진 못해도 손가락질받을 것까진 없는 삶 아닌가.


일단 내 한 몸, 내 가족부터 챙기고 남 챙기는 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든가, 뭐, 그때 가서 생각하지. 일부 교인들이 하는 말을 빌리자면 “십일조 1억씩 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이랄까. 그쯤 되면 남한테 내 것 나눠줄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안 생기면 별 수없고.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걸. 남한테 해만 안 끼치고 살아도 그게 어디야.


무해한 이기주의자. 그게 지금 내가 지향하는 인간상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 임마 요즘 왜 이렇게 인색하냐
여짜오되 아 내가 교회 끊은 지 몇 년인데 그러시나이까
이르시되 하 이 새끼 나한테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건 그대로네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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