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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13. 2020

각시야 보고 싶다

지난주에 장인어른 49재로 봉안당에 다녀왔다. 제례실 옆에 방문객이 고인에게 쓴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쓱 훑어보다가 한 편지에 시선이 꽂혔다.


              사랑해요
각시야   
보고 싶다


텍스트로는 정확히 표현이 안 되는데 “각시야”와 나란히, 하지만 살짝 위쪽에 “사랑해요”가 적혀 있었다. “각시야 보고 싶다”를 쓰다가 울컥 사무치는 마음에 “사랑해요”를 여백에 쓴 것이다.


그 편지를 읽고 차마 다른 편지는 읽을 수 없었다. 그 세 마디가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절절한 마음은 꼭 긴 말이 아니어도 전해진다.


나는 간혹 우리 부부의 이별을 생각한다. 내가 먼저 가거나 아내가 먼저 가거나. 어느 쪽이든 슬프다. 나 먼저 가면 남는 아내가 불쌍하고, 아내 먼저 가면 다시 보지 못할 사람의 추억만 곱씹고 살아야 할 내가 불쌍하다.


굳이 한쪽을 선택한다면 내가 남는 쪽을 선택하겠다. 아내에게 슬픔을 떠넘기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편이 헤어지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는 법이라니, 인생의 법칙 중에서 가장 고약한 법칙이다. 결국 우리는 이별의 슬픔을 향해 달려가거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목적지에 언제 닿을지 그곳이 목전에 닥치기 전까지 모를 뿐이다. 그곳이 아직 저 멀리, 까마득히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차피 끝에는 슬픔이 있으니까 끝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아직 오지도 않은 슬픔을 쓸데없이 미리 체험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멀리 보지 말고 지금을 봐야 한다.


부부는 지금 행복해야 한다. 헤어질 때 떠나는 사람이든 남는 사람이든 니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잘살았다고 슬프지만 웃을 수 있으려면 행복한 오늘이 쌓여야 한다.


예정된 슬픔이 오늘을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잘 살고 있다. 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내일 아내가 애 데리고 친정에서 돌아오면 또 세 식구가 지지고 볶으면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테지만,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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