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부부가 쌍으로 아팠다. 아내가 먼저 몸이 으슬으슬하다더니 다음날 나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누구 한 명은 애를 봐야 하니까, 그리고 애까지 아프면 그때는 진짜 지옥도가 열리는 거니까 내가 먼저 병원에 갔다. 내과는 차 타고 나가야 해서 집 앞 소아과에 물어보니까 성인 감기도 본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간호사가 체온을 재더니 38.7도라며 마스크를 쓰라고 줬다. 내 몸이 뜨겁긴 해도 그만큼 뜨거운 줄은 몰랐다. 열난다니까 그때부터 더 아픈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독감 검사를 해보쟀다. 독감 검사는 간단하다. 코에다 그냥 막대기를 쑤셔 넣는 거다. 아프니까 잘 참으라 했다. 심호흡을 하자 콧구멍으로 막대기가 쑥 들어왔다. 크흡, 비명은 어떻게 참았지만 눈물이 찔끔 났다. 양쪽을 다 쑤시고 나자 뒤에 서 있던 간호사가 어깨를 토닥이며 “잘했어요”라고 나직이 칭찬해줬다. 맞다, 여기 소아과였지.
독감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감기인 것 같다며 해열제와 비염약을 처방했다. 약을 먹으니 차도가 있긴 했지만 열이 쉽게 떨어지진 않았다.
이튿날 아내가 병원에 갔다. 차 타고 내과에 갔다. 장염 진단을 받고 장염약을 타 왔다. 아내가 더 빨리 나았다. 그러고 보니 왠지 나도 장염인 것 같았다. 아내와 증상이 비슷했고 계속 속이 메슥거렸거든.
열나고 속이 안 좋으니까 밥만 간신히 먹었다. 입맛이 없어서 군것질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나흘은 고생한 끝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무게를 달아봤더니 으잉? 체중이 왜 이래? 2킬로그램이나 줄었잖아? 무려 2킬로그램!
내가 비록 중간에 몇 주, 몇 달씩 빼먹긴 했지만 2년 동안 아파트 헬스장에 다니며 운동을 했다. 그렇게 해서 2년간 뺀 살이 고작 2킬로였는데 장염 한 번 앓고서 2킬로가 빠지다니.
운동을 하는데도 살이 안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한다고 많이 먹었거든. 살을 빼려면 먹는 걸 줄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운동한다는 핑계로 낮에도 저녁에도 수시로 군것질을 했다. 하루 중에 배고픈 시간이 없었다. 종일 배가 부르거나 더부룩했다. 그렇게 처먹어싸니 끽해야 일주일에 사흘 30~40분씩 운동하는 거로 살이 빠질 리가 있나.
근데 장염이 그 몹쓸 버릇을 개박살냈다. 아파서 안 먹었더니 2킬로그램이 거저 빠졌다. 몸무게가 70 후반에서 중반으로 내려왔다. 다시 후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공으로 쓴 돈은 아까워도 공으로 뺀 살은 아깝지 않았다.
그날부로 야식을 딱 끊었다. 군것질을 싹 끊을 수는 없으니까 낮에는 먹어도 저녁에는 밥 먹고 나면 바로 이를 닦아버렸다. 단호하게. 아내도 칭찬할 만큼.
거기에 더해 운동 강도를 조금 높였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재작년에 아킬레스건염 진단을 받고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걷기만 했는데 이제는 아킬레스건도 다 나은 것 같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숨이 찰 정도로만.
그랬더니 일주일에 살이 1근씩 빠지고 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체중 감량 속도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올여름에는 정상 체중에 진입할 것 같다. 그거면 목표 달성이다. 애초에 몸짱이 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D가 아니라 I자 체형으로 마흔에 진입하면 성공이다.
일하고 애 봐야 하는데 아파서 뒤질 것 같을 때는 진짜 개빡쳤는데 지나고 나니 그게 개꿀이득이었다니, 인생은 좋은 선물을 개떡 같이 포장해서 던져주기도 한다. 하긴, 포장이 뭐가 중요해. 내용만 좋으면 그만이지.
살이 안 빠져서 고민이라고요? 장염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