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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9. 2020

머스마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더니

“좀 자라, 왜 새벽에 깨서 난리고!”

빼액!


“에이씨, 안 먹을 거면 내려가 임마!”

빼액!


“밥 줘도 싫다, 자라 해도 싫다, 놀아줘도 싫다, 그럼 뭐 어쩌라고!”

빼액!


나와 아들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한 번씩은 싸운다. 처음 1년 동안은 되도록 참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내 마음에서 뭔가가 벌컥벌컥 올라올 때가 많았다. 그리고 참다 참다 못 참으면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한테 집이 떠나갈 만큼 큰소리를 쳐버렸다. 그건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노선을 변경했다. 신경질이 나면 조금만 참다가 그냥 신경질 내버리는 걸로. 말하자면 마음이 분노로 빵빵해지기 전에 가스를 조금씩 내보내는 거다. 이게 애한테는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는데 내 정신 건강에는 더 좋은 것 같다.


아니, 애한테도 별로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신경질을 내면 지도 똑같이 신경질을 내거든. 아빠가 화낸다고 안 쫄고 그냥 받아쳐버린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14개월밖에 안 된 놈이.


말도 못 하는 게 아빠 화낸다고 지도 똑같이 승질내면서 말대꾸하는 게 당장은 괘씸하다. 그런데 일단 나도 성질이 가라앉고 나면 또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매번 신경질 내고 나서 아들한테 하는 말이, 아빠가 신경질 내서 미안한데 솔직히 너도 평소에 아빠한테 신경질 내니까 쌤쌤이다, 그리고 아빠가 화낸다고 쫄지 말고 니 하고 싶은 말 다 해라, 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면 애가 어디 가서 지 할 말도 못 하는 사람이 되질 않았으면 해서다. 나는 솔직히 남 눈치 보느라 할 말 못 할 때가 많다. 고쳐 보려고 해도 워낙 그렇게 살아와서 잘 안 고쳐진다. 그래서 갈등을 잘 안 겪으니까 좋은 것 같아도 내 내면에서는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어릴 때는 그게 쌓여서 폭발하곤 했다.


그 폭발이란 뭔가 하면 다짜고짜 주먹이 나가는 거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기본적으로 1년에 한 번씩은 싸움박질을 했다. 평소에 참고 참다가 어느 순간 못 참아서 선빵을 날렸다.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크게 혼난 기억은 없다. 평소에 사고 안 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다 보니까 선생님들도 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하고 적당히 타이르고 넘어갔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해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대학 간다고 집을 나설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던 게 욱하는 성질 죽이라는 거였을까.


이젠 어디 가서 욱하지 않는다. 그냥 적당히 져주고 만다. 근데 돌아서면 그때 말로 받아버렸어야 하는데 하고 아쉽거나 분할 때가 많다. 어릴 때 주먹 대신 말폭탄을 날리는 법을 익혔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아들한테 나처럼 되지 말라고 말로 싸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말했다시피 아빠한테 하나도 안 지려고 하는 것 보면 학습 효과가 아주 좋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싸운 덕분에 아들과 더 친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남자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 그렇게 싸우고 더 돈독해진 경우도 있고 아예 갈라선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아들과는 더 친해지고 있는 것 같다. 분노를 모았다가 한 번에 폭발시키면 큰 죄책감이 따르지만 매일 조금씩 방출하면 죄책감도 조금씩만 느껴진다. 그래서 아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해지니까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아들의 기분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말도 못 하니까 알 길이 없다.


아니, 알 길이 있다. 어제가 장인어른 사십구  재라 그저께 미리 처가에 갔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일주일째 외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관 앞에 서자 벌써 아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내게 두 손을 뻗었다. 안아 달라고. 빨리 안으라고.


나는 안아 달라고 바로 안아주지 않는다. 못됐게 들리겠지만 뭐든 애를 태우는 게 재미있거든. 더욱이 그때는 밖에서 들어와서 아직 손을 씻기도 전이었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서 번쩍 아들을 들어 올렸다. 나한테 착 안기는 맛이 좋았다.


아내가 장난스럽게 아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엄마한테 오라는 표시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한테 냉큼 옮겨가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날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이다. 도리질이라니 내가 처가에 두고 떠날 때만 해도 못 하던 건데 일주일 만에 개인기가 하나 늘었다. 엄마가 몇 번을 오라고 해도 도리질을 하면서 아빠한테 착 감겼다.


그만큼 아빠가 보고 싶었단 거다. 그만큼 아빠한테 친밀감을 느낀다는 거다. 아내 말이 그날 낮에 애가 내내 신경질을 냈다고 했다. 이틀째 어디 안 나가고 집에 있었더니 답답했던가 보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후로는 낮에 짜증 내던 애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잠들 때까지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건 우리가 평소에 서로 신경질을 내면서 싸운 효과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싸우면서 친해진 거다. 근거는 없지만 그냥 그렇게 믿으련다.


그런데 이 일주일 만에 상봉한 부자의 갈등 없이 오붓한 관계는 만 하루도 지속되지 않았다. 다음날 점심때 아이가 밥을 먹다가 짜증을 내길래 내가 아이의 의자를 홱 돌리며 말했다.


“야, 너 밥 안 먹을 거면 그냥 벽 보고 있어. 벽 보고 반성해!”


아이의 반응이야 물론,


빼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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