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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9. 2020

피자를 기다리며

아내는 아직도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있다. 이럴 때 제일 좋은 건 눈치 안 보고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달 음식 한 번 시키려면 아내한테 이것저것 물어봐야 한다. 치킨으로 할지, 피자로 할지, 짜장면으로 할지, 피자를 시킨다면 어느 집의 무슨 피자로 할지 등등. 알아서 시키란다고 알아서 시키면 앞으로 얼마간은 배달 음식 못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더욱이 나 혼자 먹으면 피자를 나눠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다. 피자 한 판을 내가 독차지하는 거다. 총각 시절에는 한 판 시켜서 한 끼로 다 먹었지만 이제는 소화 능력이 그 정도 안 돼서 자제한다. 그래도 점심에 먹고 저녁에 또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내 삶의 큰 낙이다.


지금 나는 피자를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에 유로코피자라는, 아이 데리고 딴 동네 산책하다가 본 피자집에서 시험 삼아 피자를 시켰는데 딱 내 입맛에 맞았다. 정말 취향 저격이라는 말은 이런데 쓰는 구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내가 어지간한 피자집은 한 번씩 도전해봤다가 입맛만 버리고 도미노로 복귀하는데 이 집은 벌써 2주 연속 주문이다.


주문할 때 라지로 할까 패밀리로 할까 고민했다. 레귤러는 안 쳐준다. 버거킹 가서 와퍼 주니어 먹을 때는 있어도 피자는 반드시 라지 이상이다. 처음에는 패밀리를 주문표에 넣었지만 선뜻 결제를 못 했다. 기름진 음식으로 과식하는 게 걸려서.


그도 그럴 게 몇 달 전에 병원에서 간에 기름이 끼고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이거 계속 놔둘 거면 차라리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때 다음번 검사 때는 수치를 낮추겠다고 약속하고 약을 안 탔다. 그러니까 기름 진 걸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을 생각을 하니까 영 찜찜한 것이다. 물론 아예 안 먹는 게 가장 좋겠지만 사람이 차라리 책을 끊지(아무리 내가 번역가라도), 어떻게 밀가루와 기름을 끊어.


피자 주문한 지 1시간 20분째다. 전화 와서 오븐이 고장 나서 취소해줄까 하는 걸 기다리겠다고 했다. 여기 피자는 진짜 맛있거든.


잠깐. 초인종이…


피자다! 기다리는 대신 서비스 넣어준다더니 오븐 스파게티를 넣어줬다. 안 그래도 시킬까 말까 고민하다 과식하지 말자고 뺐는데 이렇게 되면 먹는 게 예의지.


이럴 때는 퇴고고 자시고 할 시간 없어. 초고 그대로 전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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