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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3. 2020

나는 저 뒤에 가련다

OO이 유명을 달리했다던데 사실이야?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OO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바로 뒷번호라 학교 독서실에서 한동안 나란히 앉았던 친구다.


엄청난 다독가였다. 야자 시간 내내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을 읽었는데 하루에 기본적으로 서너 권은 뗐다. 책 한 권 읽는 데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리는 나로서는 부러운 능력이었다.


사인은 심근경색. 누가 일주일째 연락이 안 되어 경찰에 신고했는데 혼자 살던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했다.


대학교 때 잠깐 연락한 후로 10년 넘게 문자 한 통 주고받지 않은 사이였지만 간간이 다른 친구를 통해 소식을 들었고 고3 때 기억 때문에 늘 내 마음에 친구로 남아 있는 친구였다. 그가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니 울적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심근경색으로 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저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나도 아내도 종종 걱정하는 게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혼자 일한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면 꼼짝없이 가는 거다. 내가 의식이 있어서 구급차라도 부른다면 다행이겠지만 나 말고는 나를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이야 아내가 육아 휴직 중이라 집에 있지만 2월이면 복귀다. 장모님이 아이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은 나 혼자 집에서 일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집에 있다고 해서 아빠를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아내는 지금 아이를 데리고 처가에 가 있다. 내가 일이 밀려서 집중해서 일하라고 배려를 해줬다.


모처럼 혼자가 됐다. 좋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좋은 거야 홀가분하기 때문이다. 아이 때문에 새벽에 깰 일도 없고, 낮에 거실에서 아내와 아이가 실랑이하는 소리 때문에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일할 필요도 없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다고 아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텔레비전 소리 켜 놓고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하지만 쓸쓸하다. 저울에 올리면 자유로움과 같은 무게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다다다 바닥을 울리며 아빠 방에 와서 놀다 가는 아들이 없고, 기운이 쪽 빠져서 말없이 밥을 뜨는 아내가 없다. 적적하다.


원래 있던 사람이 없으면 허전한 법이다. 홀가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도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아니라면? 그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홀가분이 아니라 홀아비가 되어 종일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다.


아내와 아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으면 남편과 아빠를 그리워하며 적어도 한동안은 사무치는 슬픔 속에 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죽으면 안 된다.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건강하게.


오늘 며칠 빼먹었던 헬스장에 다시 갔다. 그 사이 살이 한 근쯤 빠졌다. 요즘 낮에 간식은 먹어도 야식은 끊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속도면 올여름에는 정상 체중에 진입할 것 같다.


오는 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 건 순서가 없댔다. 나이순으로 죽는 게 아니란다. 가는 순번을 저 뒤로 미루려면 잘 먹고 잘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 강철 심장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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