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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3. 2020

70점짜리 글쓰기

신년 목표 혹은 소망

작년에 비록 목표한 1년은 못 채웠지만 석 달 동안 매일 글을 썼다.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귀찮아하는 마음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았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두세 편은 거뜬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 글쓰기란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인가. 나는 몇 주 만에 다시 글을 쓰는 게 두렵고 귀찮아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편 쓰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글쓰기가 왜 그리 어려운가. 잘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잘 쓰고 싶은 욕심만 버리면 더 많이 쓸 수 있고, 그만큼 실력이 늘든가 재미가 붙든가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잘 쓰려고 할수록 못 쓰게 된다니 아이러니하다. 그걸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올해야말로 이 아이러니에서 탈피하려 한다.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는 이것이다.


70점만 하자.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그랬다. 정보가 70퍼센트만 확보됐을 때 결정을 내리라고. 90퍼센트까지 기다리면 늦는다고.


그래서 나도 딱 70점에서 만족하려 한다. 90점이 될 때까지 글을 갈고닦다 보면 그전에 내 의지가 갈려나간다. 90점짜리 글을 한 달에 한 편 쓰느니 글감만 충분하다면 70점짜리 글을 일주일에 두 편씩 쓰는 게 더 낫다.


어차피 내가 지금 쓰는 글을 누가 당장 책으로 엮어서 출간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지금 나는 그저 콘텐츠를 확보한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혹시 누가 좋게 봐서 출간을 제의한다면 부족한 부분은 편집자가 고쳐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어디를 어떻게 고쳐 달라고는 할 것이다.


90점은 그때 도전하면 된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편집자가 도와주니까 한결 수월할 것이다.


잠깐, 그런데 나는 왜 90점을 노리는가. 그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평가하는 기준은 소설에 맞춰져 있다.


소설이 무엇인가? 절묘한 문장의 향연이다. 아무리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문장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칼잡이가 수시로 칼을 벼리듯이 소설가는 끊임없이 문장을 정비한다. 적어도 내가 90년대와 2000년대에 읽은 소설은 그랬다.


아니, 근데 내가 소설가는 아니잖아. 아니, 소설가 지망생이긴 하지. 근데 요즘은 나도 소설을 보는 눈이 달라져서 스토리만 괜찮으면 문장이야 기본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90점에 도달하긴 어렵다는 걸 나 스스로 알고 있다. 나는 기껏해야 85점이다. 나는 수려한 문장을 남발할 만큼 어휘력과 표현력이 대단하지도 않고, 그런 문장이 써질 때까지 문장을 곱씹을 만큼 의지력이 강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90점은 애초에 오르기 어려운 산이다.


굳이 그 산을 넘으려 할 필요 없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나는 한계에 도전한다느니 하는 말은 남의 얘기로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돈 받고 하는 일 아니면 그저 적당히 누가 욕 안 할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 글을 쓰면서 굳이 까마득하게 높은 산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70점? 그 정도는 충분히 한다. 내가 남의 글을 번역한 세월만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 글을 쓴 세월은 훨씬 더 길다. 그러니까 그냥 써도 50점은 나오고 조금만 다듬으면 70점은 가뿐하다.


거만하다고 욕해도 좋다. 글 쓰는 놈이 그 정도 자신감도 없으면 그냥 골방에서 일기장에만 끼적일 뿐이다. 어디에도 자기 글을 공개하지 못한다.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기본 점수는 먹고 들어간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70점만 하겠다. 그게 나의 2020년 목표이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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