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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Feb 29. 2020

브런치에 일기를 써도 될까

며칠 전 브런치 구독자가 순식간에 2명 빠졌다. 아, 오해 마시길. 매일 구독자 수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해서 그래프 만들고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순전히 우연히 알게 됐다.


이런 우연이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잘 썼든 못 썼든 흐뭇하게 한 번 더 읽는다. 그러자면 내 프로필로 들어가서 방금 올린 글을 선택해야 한다. 그날은 연속으로 글을 2편 올렸고 그래서 연속으로 프로필을 확인했다. 근데 아니, 확인할 때마다 구독자가 1씩 빠진 거다.


구독자 수 감소는 내가 전부터 염려하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구독자 수가 빠지는 것 자체는 괜찮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 이유다. 최근의 내 행보가 기존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글을 잡다하게 쓰고 있다. 그건 이미 작년 여름에 1일 1글쓰기라는 목표로 <오늘의 말씀 묵상>(종교와 무관)이란 매거진을 만들고 그날그날 아무 주제로나 내키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예견된 일이었다(참고로 그 프로젝트는 석 달 만에 좌초).


원래 이 브런치는 번역을 주제로 시작했다. 오직 번역에 대한 글만 올렸다. 단순한 신변잡기에 그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되도록 읽는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랄까 의미가 있는 글을 쓰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주제가 한정되어 있고 더군다나 의미까지 따지다 보니 글이 편히 써지질 않았다. 자연히 글을 뜸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제를 확장하려고 <사람이 어떻게 의미 있는 글만 써>와 <이기적 아빠 시점>이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다양한 주제로 가볍게 글을 쓰고 싶어 내린 결정이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기존의 독자를 배신하는 행위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 브런치의 구독자는 당연하게도 번역에 대한 글을 보고 모인 독자들이었다. 그들이 기대하는 글도 번역을 소재로 한 글일 게 당연했다.


그런데 대놓고 번역 외의 글로 그들의 피드를 어지럽히겠다고 선언하는 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싶었다. 그 고민은 최근 <오늘부터 독박 육아>, <부부의 언어>라는 매거진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실린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아주 숫제 브런치에 일기를 쓰겠다는 선언이었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쓰면 달리는 댓글이다. 나는 내 브런치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요즘 내가 쓰는 글은 뭐 하나 실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할 건더기가 없는 일기에 불과하다. 문장이 빼어나서 문학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런 글을 계속 브런치에 올려도 되나 고민이 됐다.


그렇게 희멀건 국 같은 글만 써서 그런지 내 글의 조회수는 그리 높지 않다. 구독자는 600명에 육박하지만 글을 발행하고 일주일간 읽히는 횟수는 편당 50-100 정도다. 그중에는 브런치 추천 알고리듬이나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도 있을 테니 고정 독자는 끽해야 20명 남짓이지 않을까 싶다. 구독자 중 90퍼센트 이상이 내 글을 읽지 않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전부 내 브런치에 실망해서 떠난 걸까? 여기에 내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


2년 반 동안 브런치를 운영한 경험에 따르면 전부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 중에서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는 50퍼센트가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50퍼센트 이상이 자연히 브런치에서 멀어졌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 정도라면 읽기만 하는 사람의 이탈률은 더욱 높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구독자 중 상당수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브런치에 흥미를 잃은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한편으로 내가 글을 잡다하게 쓰는 현재도 구독자는 완만하게 늘고 있다. 기존의 독자가 떠나고 새로운 독자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독자는 지속적으로 교체된다. 갈 사람 가고 올 사람 오고 남을 사람 남는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써봤자 부질없는 짓이고 나 자신만 실망시킬 뿐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누군가를 실망시키더라도 나 자신에게, 내 욕구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브런치를 통해 내가 해소하려는 욕구는 무엇인가? 글을 쓰고 읽히고 싶은 욕구다. 내 안에는 항상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글을 나 말고 누군가가 또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브런치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다.


만일 내가 브런치에서 번역이란 주제만 고집했다면 욕구불만이 됐을 것이다. 번역으로 쓸 수 있는 글은 한정되어 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쓸 게 없으니까 답답해하다가 브런치를 접었을 테고, 그래서 더욱 답답한 마음으로 또 다른 해소책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일기일망정 뭐라도 쓰고 그걸 읽어주는 사람이 단 몇 명이나마 있으니까 욕구가 해소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즐겁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욕구는 내 글의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을 확보하는 거다. 사람이 습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으니 꾸준히 참신한 내용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타일이 먹히면 똑같은 걸 몇 번이나 울궈먹어도 잘 팔린다. 랄프 로렌을 보라. 매년 그놈이 그놈인 폴로티를 찍어내는데도 잘 팔린다. 사람들이 그 스타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글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설렁설렁 쓴 것 같지만 그 흐름을 보면 질서가 잡혀 있다. 멋있는 말이 없는 대신 폼 잡는 말도 없다. 형식은 글이지만 말하는 것처럼 편하게 읽힌다. 아니면 말고식 말투로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어떤 근사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쌓은 글을 탁 튕기는 손가락처럼 실없는 말로 끝내버린다. (내가 볼 땐 그런데 뭐 아니면 말고.)


이런 스타일은 나 스스로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자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스타일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제는 어쩌면 잡다하게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면 지금처럼 잡스럽게 글을 쓰는 게 팬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매거진 2개를 신설하고 나서 글마다 박히는 라이킷 개수가 조정을 받았다. 얼마 전에 샀던 미국 주식들처럼.


하지만 나는 주가의 폭락,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떡락, 그래, 떡락에도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어차피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우상향을 기대하고 들어간 시장이다. 1년쯤 꼬라박아도 괜찮다. 아내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지금의 잡스런 글쓰기도 그렇다. 당장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손실이 있어도 감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수익이 날 것이라 본다. 최소한 글솜씨는 향상되겠지. 그걸로 무슨 길이 열려도 열리겠지.


그러니 일기를 일기장 대신 브런치에 계속 써야겠다.


주식도 내 글도 상승장은 온다. 혹시 그전에 내 글이 끊기면 아내한테 맞아 죽은 줄 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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