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놀아 달라고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무시하고 키친타월로 소고기의 핏물을 빼고 있었다. 점심 메뉴는 육전. 평소에는 비싸서 안 먹는 한우를 순전히 아이를 위해 샀다. 싼 부위로 샀는데도 300그램에 15,000원이라니. 삼겹살 1킬로그램 가격이다.
계란물을 풀고 미리 갈아 놓은 양파를 넣은 후 샤브샤브용으로 썬 한우를 한 점씩 담갔다.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차에 군침이 확 돌았다. 방금까지 옆에 있던 애가 어디 갔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맙소사.
주방 매트 위에 지름 20센티미터짜리 참기름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두 장의 매트 사이로 이미 참기름이 스며들었고 아이의 이동 경로를 따라 기름이 거실까지 이어졌다. ‘안 돼, 소리 지르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참아—’
하지만 이미 입에서는 괴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안 그래도 애가 방금 간식 먹고 아직 밥 먹을 시간도 안 됐는데 배 고프다고 보채서 짜증이 나 있었고,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요 며칠 종일 애 보는 것 외에도 신경 쓸 게 많아서 잘 쉬지를 못한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그러니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애를 보고 소리를 지르면 안 될 것 같아서 바닥을 보고 질렀다.
아이 잘못은 아니다. 이제 15개월이다. 조미료를 갖고 놀다 쏟을 수도 있다. 애초에 조미료 서랍에 잠금장치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가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걸 좋아해서 그냥 놔뒀다. 그러다 오늘 사달이 난 거다. 바로 옆에 있던 까나리액젓이 아니라 참기름을 쏟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거실에 있던 아이가 슬금슬금 내 쪽으로 기어 올 기미를 보이는 걸 “오지 마!” 소리를 질러서 저지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 손수건으로 아이를 닦았다. 참기름내가 진동했다. 손수건만으로는 무리였다. 욕실로 데려가서 물로 씻겼다.
다음은 바닥의 참기름. 종이 행주를 여러 장 뜯어서 일단 옅게 묻은 부분을 닦았다. 그리고 웅덩이에 종이 행주를 대량 투하했다. 참기름 진압 완료.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주방 매트를 들자 2차 웅덩이 등장!
“끄아아아아!”
너무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행주 두루마리를 냅다 바닥에 던져 버렸다. 아이가 또 오려고 하는 걸 또 소리쳐서 못 오게 했다.
초등학교 때다. 나와 동생이 점심때 뭘 잘못했던가 보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혼자 우리를 보던 할머니가 “아유, 씨발, 지겨워!”라고 소리 지르면서 주전자를 싱크대에 던졌다. 유리 주전자가 산산이 깨졌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한테 그러지 말아야지 결혼 전부터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이 무색하게 오늘 나도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졌다. 다행히 유리는 아니었다.
참기름을 다 닦고 매트를 욕조에다 처넣었다. 프라이팬을 달궈서 기름을 두르고 육전을 구웠다. 아이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식판에 밥과 육전을 담아 대령했다. 아이는 육전을 잘도 주워 먹었다. 나도 밥을 퍼서 육전과 명란김을 곁들여 먹었다. 명란김은 요즘 내가 즐겨먹는 김이다. 달고 짜서 입맛이 확 돈다.
밥을 다 먹은 아이의 손을 닦고 바닥에 내려줬다. 참기름이 묻었던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육전을 만들기 시작한 게 11시인데 애 밥 먹이고 청소까지 하고 나니 벌써 1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아이 앞에서 신경질을 낸 게 후회됐다. 그래서 화내서 미안하고 그것과 별개로 아빠는 항상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요즘 수시로 하는 말이다(<아이에게 화내고 나면 꼭 하는 말> 참고).
낮잠을 푹 재우려면 배를 빵빵하게 채워놓아야 한다. 우유를 꺼냈다. 비닐을 까는데 옆에 붙어서 빨리 내놓으라고 성화다. 다리 밑에서 구린내가 살살 올라온다.
아이는 바닥에 누워 분유병에 담긴 우유를 흡입했다. 엉덩이에 코를 대자 똥 냄새가 지독했다. 새 기저귀와 물티슈를 옆에 가져다 놓고 헌 기저귀를 벗겼다. 어휴, 아주 빈대떡을 싸놨구나. 싼 지 좀 됐는지 똥은 벌써 딱딱하게 말랐고 엉덩이부터 고추 밑까지 여기저기에 똥 가루가 묻어 있었다.
똥을 닦았다. 내 손에 묻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티슈에 묻은 똥이 내 손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티슈는 딱 한 번씩만 접어서 쓰고 새로 뽑았다. 반쯤 닦았을 때 우유를 다 마신 아이가 분유병을 내려놓았다.
“만지지 마, 만지지 마, 만지지— 그걸 왜 만져!”
내 경고에도 아이는 손을 내려 아직 덜 닦은 엉덩이를 주물렀다. 승질이 확 나서 또 신경질을 냈다. 아이는 울상이 됐다. 그때—
뽀옹.
아빠의 완력에 의해 두 다리가 공중에 번쩍 들린 아이가 활짝 열린 항문으로 내보낸 소리였다. 어이가 없어서 그만 큭 웃음이 나왔다. 지도 웃긴지 깔깔 웃는다. 그렇게 우리의 전쟁은 끝나는 것 같았으나……
“그냥 있어, 만지지 마, 만지지— 그 손으로 얼굴을 왜 만져!”
똥 묻은 엉덩이를 만진 손으로 이번에는 지 얼굴을 만진다. 아이씨, 진짜. 똥을 닦다 말고 물티슈를 새로 뽑아서 아이의 손과 얼굴을 닦았다. 그러고서 다시 똥을 닦으려는데 에라, 씨발, 물티슈가 똑 떨어졌네.
새 물티슈를 가지러 가면 혼자 돌아다니면서 거실에 똥을 처발라 놓을 게 뻔했다. 그래서 들쳐업고, 물론 내 몸에 똥이 묻지 않게 기술적으로, 욕실로 데려가서 물로 엉덩이를 씻겼다. 애초에 그랬으면 편했겠지만 어린이집 가면 그렇게 안 해주니까 물티슈로 닦는 데 적응시켜야 한다고 해서 요즘은 되도록 물티슈로만 닦는다.
다시 거실에 데려와서 다리 위에 앉혀 놓고 몸부림치는 놈을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면서 신세한탄을 했다.
“야, 한번 생각해봐라. 아빠가 육전 만들고 있었지? 너 먹으라고. 근데 참기름을 쏟았네! 참기름 닦는 거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거 아빠가 다 닦았어. 그러고 나서 똥 쌌다고 똥 닦아줬지. 근데 니가 손으로 똥 묻은 궁뎅이를 만졌잖아. 그 손으로 얼굴까지 만지고! 그러면 화가 나, 안 나?”
알아듣지도 못할 애한테 사건의 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내 상황이 웃겨서 킥킥 웃음이 났다. 그랬더니 지도 뭐가 웃긴지 킥킥거린다. 그걸로 끝났다. 우리는 악수 대신 웃음으로 사나이답게 화해했다.
그러고는 같이 소파에 앉아서 손바닥으로 소파를 두드리며 낄낄대다가 붕붕카를 태우라고 해서 태웠더니 앉아서 꾸벅꾸벅 존다. 낮잠을 자러 같이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놈의 자식이 바로 잘 턱이 있나. 지 침대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 옆에 누웠다 일어났다, 책장에서 책을 뺐다 꽂았다 하다가 서랍장을 뒤지려고 내 옆으로 와서 팔뚝에 앉는데, 어우씨, 또 똥 냄새.
“야 이 양심 없는 놈아!”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부자는 “참 묘한 조합”이다. 맨날 신경질 내고 티격태격하다가도(15세도 아니고 15개월 애랑 그러고 있는 나도 참 어지간한 놈이다) 좀 이따 보면 같이 붙어서 낄낄대고 있댄다. 싸울 땐 싸워도 화해하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