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애한테 화를 안 내려 더 노력 중이다. 내가 화내면 아이가 달려가서, 아니, 기어가서 안길 엄마가 출근하고 없으니까. 화를 내도 아내가 있을 때 내려 한다.
그런데 오늘 낮에 기어이 분노가 폭발했다.
오후 낮잠 시간이었다. 아이는 잠을 안 자려 했다. 이해가 안 간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데 끽해야 1시간 눈 좀 붙인다고 무슨 큰일이 나나. 백수가 제일 바쁘다는 말은 우리 애를 보고 하는 말이다.
아이야 자든 말든 나는 누워서 눈을 감았다. 나라도 살아야지.
아이가 다다다 내 얼굴 쪽으로 기어 온다. 철퍽.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대 갈겼다.
이제 15개월밖에 안 됐지만 제법 손이 맵다. 이미 머리맡에서 아이의 기척이 느껴질 때부터 감은 두 눈이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벌써 수차례 맞아봤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를 참고 말로 타일렀다.
아무리 타일러도 ‘들어처먹질’ 않았다. 숫제 딴청을 피웠다. 그러고서 내가 다시 누워서 눈을 감으면 또 한 대 때렸다. 그게 몇 번 반복되면 진짜 ‘아가리’를 한 방 날리고 싶어 진다. 애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애가 안 듣는 데서 하는 말이라지만 너무 심한 말 아니냐는 소리 같은 건 안 할 거다.
오늘은 개빡쳤다. 애한테 “아빠가 때리지 말랬잖아!”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방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애는 방문을 두드리며 오열했다. 아빠가 자기한테 화를 내서 그러는 건지, 방 안에 갇혀서 그러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30초 정도 화를 식힌 후 방문을 열었더니 엉엉 울면서 기어 나온다.
“아빠 화낼 자격 있어. 얼굴 맞으면 기분 나쁘잖아. 그래서 하지 말라고 벌써 몇 번이나 말했잖아”라면서 내 얼굴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공교롭게 무릎까지 꿇고 있었다. 다급하게 나와서 앉다 보니까 그렇게 됐을 뿐이지만 화난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애가 말을 아예 못 알아듣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식탁에서 물컵 떨어뜨리지 마라, 안경 잡아당기지 마라, 여러 번 타일렀더니 이제는 안 한다. 얼굴 때리는 것도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야 부모니까 참는다고 해도 다음 주부터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이나 남의 애 때리면 골치 아프다.
애 입장에서는 어쩌면 자기가 얼굴을 때려서 혼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간다. 아내와 맨날 하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여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일 만큼 영악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봐서 지가 불리할 것 같으면 살살 애교를 피우는 기술을 타고났다.
여하튼 애가 알고 하는 거든 모르고 하는 거든 간에 등원하기 전에 손버릇을 고쳐놓아야 하니까 계속 타이르고 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자고 말고는 니가 알아서 해. 아빠는 책 읽을 거야”라고 말하고 바닥 매트에 엎드려 책을 읽자니 내 옆에 쪼르르 와서 앉는다. 그러고는 배실배실 웃는다. 귀엽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차분하게 말했다.
“아빠가 화냈다고 억지로 잘 보이려고 할 필요 없어. 아빠가 화내는 건 화내는 거고 너 사랑하는 건 안 변해. 화내는 건 잠깐이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억지로 웃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사랑하는 게 안 변한다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도 굳이 그런 말을 한 건 애가 거짓으로 웃고 있는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빠가 자기보다 강하니까, 자기가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는 거라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남 눈치나 보고 비위나 맞추려고 설설 기는 사람으로 크진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부모한테 비굴하게 굴면 바깥에 나가서 부모보다 냉정한 사람들 앞에서는 얼마나 비굴해지겠는가. 그래서 아이한테 크게 화내고 나면 시간이 좀 지나고서라도 꼭 저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기한테 없는 걸 자식한테 바란다더니 과연 그렇다. 내가 눈치 보고 굽실거리는 성격이니까 내 새끼는 그런 새끼가 안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