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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22. 2020

아날로그식 읽기 한 달 후기

나는 요즘 아날로그식 읽기를 하고 있다. 원래는 디지털파였다. 책은 전자책으로 읽고 온라인의 글은 폰이나 태블릿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종이책을 주로 보고 인터넷 글은 웬만하면 출력해서 본다. 이유는 하나, 아이(16개월)에게 폰 보는 모습을 되도록 안 보여주기 위해서다. 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다.


첫째, 시력을 해친다. 아이는 폰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볼 줄 모른다. 팔이 짧으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밝은 디스플레이를 단거리에서 보면 눈이 나빠지기 쉽다.


둘째, 폰은 중독성이 있다. 니르 이얄의 ⟪훅⟫에 중독을 만드는 조건 중 하나가 가변적 보상이라고 나온다. 가변적 보상이란 쉽게 말해 비슷한 행동을 해도 그때그때 결과가 달라지는 걸 말한다. 어른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에게 폰은 가변적 보상의 대표 주자다. 내가 잠금을 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잠금화면 밖에 못 본다. 하지만 잠금화면만 해도 손가락을 움직이면 알림 메시지들이 같이 움직이거나, 비밀번호 입력 화면이나 긴급 통화 화면이 뜨거나, 카메라가 작동된다. 아이에게는 이것만으로 엄청난 자극이다. 그래서 폰만 보이면 달려든다.


아이 앞에서 폰 안 보는 아빠가 되기 위해 아날로그 읽기를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다. 그간 느낀 장단점은 이렇다.



아날로그식 읽기의 장점

1. 눈이 편하다. 아무래도 항상 눈 쪽으로 빛이 나오는 액정 화면보다는 아무것도 쏘지 않는 종이로 보는 게 훨씬 편하다.


2. 집중이 잘 된다. 폰이나 태블릿으로 읽을 때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즉시 다른 앱을 켜거나 다른 웹사이트를 탐색할 수 있어서 딴짓을 하기 쉽다. 하지만 종이로 읽을 때는 폰으로 딴짓을 하려 해도 폰을 들고 켜야 하는 추가적인 절차가 생겨서 딴짓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


3. 넘기는 맛이 있다. 폰으로 글을 읽으면 내가 얼마나 읽었고 얼마나 남았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일부러 페이지 수나 스크롤바를 봐야 한다. 하지만 종이로 읽으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게 확실히 느껴져서 성취감이 든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게 계속 읽게 만든다.


4. 형광펜 칠하는 맛이 있다. 디스플레이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건 시각적 효과만 있다. 하지만 종이에 형광펜을 칠하면 손끝으로 종이와 펜촉의 마찰이 느껴지고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시각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도 같이 자극한다. 그 자극이 읽는 맛을 더한다.


5. 마음이 편하다. 아이가 폰 갖고 놀려고 하면 뺏으면서 내가 폰 쓰다가 아이에게 들키면 민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폰 대신 책이나 종이를 쥐고 있으니 아이 앞에서 당당하다. 아이가 폰 많이 쓰는 건 안 닮았으면 좋겠지만 글 많이 읽는 건 닮아도 좋다.



아날로그식 읽기의 단점

1. 종이와 잉크 비용이 발생한다. A4 용지 500장을 산 지 1달도 안 돼서 또 500장을 샀다. 하루에 많이 뽑으면 50장 이상도 뽑기 때문에 종이가 금방 소모된다. 프린터 잉크도 같이 줄어든다. 다행히 종이는 500장에 약 4,000원(장당 8원), 잉크는 내가 쓰는 프린터의 경우 6,500장 출력할 수 있는 정품 검정 잉크가 약 8,500원(장당 1.3원)이라 크게 부담되진 않는다. 1장 출력할 때 10원 정도 소모되니까 1달에 1,000장을 출력해도 1만 원 정도다. 나는 양면을 다 이용하니까 실제 드는 비용은 그보다 더 적다.


2. 어두운 곳에서 볼 수 없다. 평일에는 내가 아이와 같이 자는데 새벽에 깼을 때 폰은 불을 켜지 않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이나 출력물을 읽으려면 불빛이 필요한데 작은 스탠드를 희미하게라도 켜면 아이가 깨서 침대 빗살 사이로 아빠 뭐 하나 유심히 보기 때문에 사실상 밤에 아이 방에서 읽을 수가 없다.


3. 보고 싶은 책을 당장 볼 수 없다. 전자책은 사서 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이책은 서점에 가서 사오든,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하루이틀 후에 받아오든 해야 한다.


4. 형광펜 칠한 부분을 디지털 문서에서 다시 표시해야 한다. 폰으로 보면 중요하거나 인상적인 문장을 바로 하이라이트해서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종이로 읽을 때는 폰이나 컴퓨터에서 해당 문서에 접근해 다시 표시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이런 단점이 있지만 나는 부모로서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안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훨씬 크다고 본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아날로그 읽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나처럼 아날로그 읽기를 하려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남겨본다.



아날로그식 읽기 팁

1. 인스타페이퍼포켓을 활용하자. 온라인상의 글을 나중에 읽기 위해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다. 컴퓨터와 폰, 태블릿 등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 최대 장점은 메뉴와 광고 없이 본문만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력 시 쓸데없이 공간이 낭비되는 걸 방지할 수 있다.


2. 폰이나 패드는 멀찌감치 떨어뜨려놓자.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손이 가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아날로그 읽기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3. 사전이 필요하면 전자사전을 이용하면 된다. 맞다, 2000년대 초반에 아직 온라인 사전이 활성화되기 전에 쓰던 그 전자사전. 나는 영어로 된 글을 볼 때 사전을 찾으려고 폰을 켜면 또 폰질을 하게 되는 게 싫어서 전자사전을 하나 장만했다. 중고나라에서 배송료까지 1만 원에. 중고나라에 가면 오래됐지만 기능은 이상 없는 전자사전을 1~5만 원에 판매한다. 나는 여러 기종 중에서 배터리 충전식이 아니라 건전지 교환식 사전을 구입했다. 대부분의 기기가 2000년대 초중반 출시 제품이라 배터리 지속 시간이 짧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4. 어지간히 시력이 좋지 않은 한 장에 여러 페이지를 출력하지 말자. 종이를 아끼려고 A4 1장에 2~4페이지를 축소해서 출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글씨 크기가 작아서 쉽게 눈이 피로해지고 읽는 맛이 떨어진다.


5. 프린터는 기왕이면 무선 연결되는 프린터가 좋다. 굳이 컴퓨터를 켜지 않고 폰이나 태블릿에서 바로 출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종이책은 지마켓에서 사면 15퍼센트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지마켓에 예스24,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 인터파크가 입점해 있는데 서점 사이트에서 살 때처럼 정가에서 10퍼센트가 할인되는 건 기본이고 몇몇 카드로 결제할 경우 지마켓에서 15퍼센트를 추가로 할인해준다. 지마켓에서 도서명으로 검색한 후 판매자가 위의 서점인 상품으로 들어가면 상품 설명란 상단에 할인 배너가 붙어 있다.


7. 외국 잡지를 구독하려면 구독 대행 사이트 말고 자체 사이트를 이용하자. 나는 이번에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와이어드(Wired)⟫, ⟪더 라이터(The Writer)⟫의 종이 잡지 구독을 신청했다. 모두 각 잡지사 웹사이트에서 신청했는데 주간지인 ⟪더 뉴요커⟫는 16주 구독료로 10달러, 월간지인 ⟪와이어드⟫와 ⟪더 라이터⟫는 각각 1년 구독료로 35달러와 43.95달러를 지불했다. 배송료까지 합한 가격이다. 국내에서 모 구독 대행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에 ⟪더 뉴요커⟫는 6개월에 23만 원, ⟪와이어드⟫는 1년에 12 만원으로 몇 배나 차이가 난다. 자체적으로 국외 구독자를 받지 않는 잡지가 아니라면 잘 비교해보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2011년 내몽골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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