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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14. 2020

브런치 오래 하려면 OO을 끄세요

내가 브런치 생활을 17년에 시작했다. 그때 브런치 시작한 놈들이 백 명이다 치면은 지금 나만큼 쓰는 놈은 나 혼자 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 쓰는 놈 제끼고, 못 쓴 글 보내고, 알림 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독자야, 라이킷 하나 찔러봐라.


다소 과장됐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17년 8월에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그때 활동하던 작가들 중에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활발히 글을 쓰는 작가는 많지 않다. 특히 나처럼 갈수록 글 쓰는 빈도가 늘어나는 작가는 드물다. 왜냐? 위의 대사에 답이 있다(참고: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의 명대사를 빌렸습니다).


1) 잘 쓰는 놈 제끼고

내가 뭐 잘 쓰는 작가들 해코지하거나 음해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작가가 공통된 패턴으로 브런치를 떠난다. 처음에는 1주일에 1편씩 올라오던 글이 2주일에 1편, 1달에 1편으로 줄어들다가 결국에 가서는 글이 완전히 끊기거나 1년에 1-2편 올라온다.


왜 그럴까?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케 하이(Khe Hy)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면 놀이,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하면 일”(영문 기사)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일이 되어서 재미가 없어지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뭐냐고?



2) 못 쓴 글 보내고

첫째, 잘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글 쓰는 것 자체를 즐기더라도 쓰다 보면 점점 잘 쓰고 싶어 진다. 그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유혹이다. 그게 심해지면 글쓰기를 즐기지 못한다.


나도 그런 유혹에 시달렸다. 그래서 예전에는 글이라고 해봤자 한 달에 한 편 올리면 많이 올리는 거였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서너 편씩 쓰기도 한다. 너무 잘 쓰려고 안 하기 때문이다. 잘 쓰지 못한 글도 발행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70점짜리 글쓰기>, <글에 의미 두지 않기>를 참고하시길.



3) 알림 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브런치 글쓰기에서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지는 두 번째 이유는 알림 때문이다. 브런치 앱은 기본적으로 내 글에 댓글이나 라이킷이 달리면 푸시 알림을 보낸다. 작가가 독자의 반응에 기운을 얻어 글 쓰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하려는(+ 브런치 접속 빈도를 높이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정반대다.


알림은 집착을 만든다. 폰이 울릴 때마다 혹시 브런치 댓글이나 라이킷 알림일까 하는 기대가 생기고, 폰이 한참 안 울리면 혹시 브런치 알림이 왔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의 탈을 쓴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실제로 폰을 보면 기대는 대체로 무참히 깨진다. 어지간한 인기 작가가 아닌 이상 수시로 댓글이나 라이킷이 달릴 리는 없으니까 실망만 한다.


실망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잡아먹는다. ‘어차피 써도 반응도 별로 없는데 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글 쓸 맛이 뚝뚝 떨어진다.


또 한편으로 알림은 글쓰기에서 도피하는 수단이 된다. 글쓰기는 재미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 꼭 쉬운 건 아니다. 글쓰기는 어렵다. 고통스럽다. 형체도 질서도 없는 생각을 구체적이고 정돈된 문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건 기본적으로 인지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쓰는 내내 글쓰기에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알림이 울리면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누가 라이킷했는지만 보고, 댓글 내용이 뭔지만 보고 다시 돌아오자고, 스스로도 거짓말인 줄 아는 다짐을 하고 글쓰기를 중단한다. 그러고는 영영 글쓰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브런치 곳곳을 누비면서 이따 저녁에 마저 쓰자고, 내일 다시 쓰자고 생각한다. 내일이 모레가 되고 다음 주가 된다.


“이봐 젊은 친구, 알림이라는 게 말이야, 독기가 세거든?”


이런 역효과를 알고 나는 진작에 브런치 알림을 꺼버렸다. 알림을 안 받는다고 댓글이나 라이킷이 달린 걸 모르고 지나칠 리는 없다. 브런치 앱에 접속하면 왼쪽 상단에 청록색 점이 떠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댓글에 신속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독자도 실시간으로 대댓글이 달리길 기대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기본적으로 호흡이 느린 플랫폼이다. 쓰는 사람도 시간을 들여 쓰고, 읽는 사람도 시간을 들여 읽는다.


알림을 켜놨을 때 나는 브런치에 휘둘렸다. 브런치가 알림을 보내면 헐레벌떡 들어오고, 브런치가 알림을 안 보내면 시무룩해졌다. 댓글과 라이킷 수가 내 글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반응이 저조한 것에 좌절했다. 그렇게 결과에 집착했다.


지금이라고 댓글과 라이킷에 초연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그것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거나 그것 때문에 글쓰기에 심각하게 지장을 받진 않는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브런치와 차단되어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많이 쓸 수 있고, 생산량이 늘어나니까 글을 쓰는 재미도 더 커진다. 글의 품질도 나아지고 있을까? 글쎄. 그쪽으로는 일부러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다. 품질을 고민하는 순간 재미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심심할 때 무심코 책을 펼치는 것과 같은 습관으로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품질보다는 재미에 무게를 두려고 한다.


이번 주에는 브런치가 일주일에 두 번씩 카톡으로 추천 글을 날리는 것도 차단했다. 브런치의 추천 글이 대체로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왜 내 글은 뽑아주지 않을까 하는 실망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건 내 글쓰기에 독이 된다. 그래서 끊어냈다.



요컨대 내가 2년 넘게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건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게 만드는 내외부적 요소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많이 쓸 것이다. 그러면 된 거다. 어느 바닥이든 버티는 놈이 장땡이다. 내가 번역계에서 10년 넘게 버텨봤기 때문에 잘 안다. 그러니까 나는 작가로도 잘 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화란아, 나도 펀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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