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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31. 2020

추천사 단상

“우선 OOO 감독님,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춘 OOO 선생님과 OOO과 OOO, 그리고 스태프분들께 감사하고 우리 OOO 대표님, OOO 실장님, OOO 팀장님, 매니저 OOO, 스타일리스트 OOO에게 감사합니다. 아참, OOO 님, OOO 씨, OOO 선생님께도 감사하고……”


연말 시상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수상 소감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니, 소감을 말하랬지 언제 아는 사람 이름 나열하랬어, 저런 건 그냥 개인적으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이번에 내 책에 두 분이 추천사를 써주셨다. 섭외는 출판사에서 했지만 저자로서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라서 메일 주소를 받았다. 그러고도 며칠을 묵혀놨다가 감사 메일을 보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돼서 미뤘다.


두 분 다 나와 일면식이 없었다. 다만 그 이름이 낯설진 않았는데 한 분은 선배 번역가이자 브런치 이웃이었고 다른 한 분은 내가 종종 보던 <기획회의>라는 출판잡지에서 간혹 기고문으로 접한  분이었다.


어떻게 써야 성의 없다는 느낌도, 오버한다는 느낌도 주지 않을지 고민이었다. 친근한 말투로 갈지(“추천사 감사해요. 바쁘신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어요?”) 아니면 깍듯하게 존대할지(“귀한 시간 내서 써주신 추천사 감사히 받았습니다”) 결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는 사이니까 안전하게 후자를 택했다. 너무 사무적으로 읽히진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싸가지없게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호칭도 그에 맞춰 선생님, 대표님으로 불렀다. 번역가 선배님한테서 금방 답장이 왔다. “고명 씨”라고. 그 말을 보니까 명치에 얹혀 있던 돌멩이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씨’는 ‘님’보다 훨씬 가까운 느낌이다. 그 한마디에 그분과 거리가 한층 좁혀진 것 같았다. 밖에서 만나서 친해졌다면 누님 혹은 누나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위로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형,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가 좋다. 님보다는 씨가 편하고 씨보다는 형, 누나, 동생이 더 좋다.


그분의 메일이 반갑고 감사했다. 쑥스러워도 먼저 메일을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났더니 이름을 줄줄 읊는 수상 소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정말로 감사하니까 그러는 거다.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이 혹시라도 섭섭해하지 않도록. 기왕이면 당사자도 주변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워지라도 카메라 앞에서 그 이름을 말하는 거다. 혹시나 빠졌다고 서운해할 사람이 없도록 생각나는 대로 다 거명하는 거고. 그러니까 그런 수상 소감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의 발로인 거다.


나도 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께 연말 시상식 수상자와 같은 감사함을 느낀다. 추천사라는 게 길지 않은 글이지만 누군가의 책을 읽고 그 사람을 위한 글을 쓴다는 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허투루 하지 않고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추천사로 내 책이 더 빛나기 때문이다.


*추천사는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펀딩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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