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썰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May 10. 2020

나의 모쏠 탈출기

“신랑 김고명 군은 신부 OOO 양을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주례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 나이 겨우 스무 살인데 지금 결혼하면 앞으로 내 인생에 연애는 없는 거잖아? 안 돼, 그러기엔 내 20대가 너무 아까워!’

나는 신부의 손을 뿌리치고 예식장 문을 향해 내달렸다. 냅다 몸을 날려 거리로 나선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검은 정장을 입은 하객들이 예식장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나를 쫓았고 카메라는 선봉에서 깃발처럼 부케를 치켜든 신부를 클로즈업했다.

번쩍 정신이 들면서 잠에서 깼다. 돌아보면 그건 일종의 예지몽이었다. 나는 진짜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아까운 20대를 홀라당 날려먹었다. 10대 때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나는 모태쏠로, 줄여서 모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중-남고-공대로 이어지는 모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건 아니다. 남녀의 반이 나뉘어 있던 중고등학교를 나오긴 했어도 대학은 영문과에 들어갔다. 심지어 교회도 다녔다. 둘 다 대표적인 여초 집단이다. 여자를 만날 일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오히려 나는 여자들과 꽤 친하게 지냈다. 여자들과 말이 잘 통했고, 쓸데없이 쎈 척하는 젊은 수컷들과 있느니 차라리 여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었다.

근데 왜 연애를 못 했을까? 좋아하는 여자 앞에만 가면 말문이 턱턱 막혔기 때문이다. 기껏 데이트 기회를 잡아놓고도 어버버하다가 돌아와서 애꿎은 이불만 뻥뻥 찼다. 꾸미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특별한 날에는 멋진 옷도 입고 머리에 뭐라도 바르고 나가면 좋았으련만 평소처럼 헐렁한 셔츠, 아니, 남방을 치렁치렁 빼 입고 머리는 타고난 5:5 앞가르마를 그대로 방치했다.

거적때기를 입어도 광채가 나는 얼굴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사실 나는 나 자신을 거적때기 취급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나 같은 게 이 사람에게 가당키나 해?’라는 몹쓸 생각에 시달렸고, 좀 꾸며볼까 싶다가도 ‘꾸밀 줄도 모르는 게 어설프게 꾸몄다고 비웃음이나 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

한마디로 자존감이 문제였다.

그렇게 덜컥 서른이 됐다. 학교는 이미 졸업한 지 오래였고 그즈음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아무리 기도해도 연애 안 시켜준다고 하나님한테 삐쳐서 그런 거 아님). 대신 요가를 다니고 연극 동호회에 들어갔다. 기존의 공동체와 결별하고 전혀 새로운 집단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다닌 요가원은 명상을 중시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몸이 풀리듯이 마음도 풀렸다. 나 자신을 보는 경직된 시선이 누그러졌다. 남들을 의식하던 경계심이 느슨해졌다.

연극 동호회에 나가면서 머리에 왁스도 바르고 평소에 안 입던 옷도 입기 시작했다. 그곳 사람들은 나를 모르니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꾸밀 건 꾸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나 연극하는 남자야,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연극 무대에 서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없이는 못 하는 일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런 오만함은 그동안 겉으로 애써 당당한 척해도 안으로는 찌질하고 쭈구리 같던 내게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

그해 5월에 어느 NGO 행사에 봉사자로 참여했다. 내 또래의 여자와 한 조가 되어 1시간 동안 종로 일대를 돌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행사가 끝나고 무슨 용기가 났던지 나는 생전 안 해본 말을 했다.

“차 한 잔 하실래요?”

근데…… 어라, 이게 되네?

우리는 카페에서 2시간 정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왠지 내 인생에도 꽃이 필 것 같아서 내친김에 또 한 번 질렀다.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어라, 이게 또 되네?

이후로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서로에게 이성적인 끌림은 못 느꼈다. 하지만 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몇 달 후 친구의 소개로 여자를 만났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세 번쯤 만났을 때 덥석 손을 잡았다. 어라, 이것까지 되네? 그렇게 첫 연애가 시작됐다.

기나긴 모쏠의 터널을 지나온 경험자로서 후배 모쏠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1. 지금 나의 자기 인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자.
2. 자기 인식을 바꾸려면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제일 쉽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다시 연애를 하라면 할 수 있을까? 못 한다. 첫 연애가 4년 만에 결혼으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처자식이 딸린 몸이다. 연애는 꿈도 꿀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젠가 꿈에서 대학생인 내가 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데 모퉁이를 돌자 별안간 아내가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달빛 아래에 아내가 냉랭한 표정으로 서 있고 나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그러니까 이번 생은 틀렸다. 기껏 갈고닦은 연애 스킬을 평생 썩힐 수밖에 없게 됐다. 만일 자비로운 신께서 다음 생으로 딱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고민 없이 연애 스킬을 택하겠다. 그래서 진짜 원없이 연애를 할 것이다. 아주 신생아실에서부터 썸탈 거야, 내가.

그러면 내 다음 생의 모든 연인들, 먼 훗날 우리 만날 때까지 안녕. 아, 참고로 결혼은 안 돼요. 아내가 다음 생에도 결혼은 자기하고 해야 한대서요. 내 연애 스킬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에는 있고 인스타에는 없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