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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l 18. 2020

번역료는 왜 안 오를까?

출판 불황의 현실과 번역가의 대응법

번역이 만만해?!

글 쓰는 일은 하고 싶고 관심도 받고 싶은데 위험하고 불확실한 일은 싫다니 깐깐하기도 하셔라.
— 김선영,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한 달 전에 위의 문장을 인용하며 인스타에 이렇게 썼다.


(전략) 제가 딱 저래서 번역가가 됐어요. 작가로 사는 건 위험하고 불확실하잖아요. 내 글이 언제 팔릴지 모르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건 싫더라구요. 고통 극혐. 근데 번역은 이미 남이 쓴 글을 출판사에서 받아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돈 주니까 이거다 싶었죠. (후략)


얼마 후 아래와 같은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남이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돈을 준다는 말이 번역을 시작할 때 했던 생각이란 건 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번역을 모르는 사람에게 번역은 쉬운 일이란 인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인식 때문에 번역가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발언이 서운하다.


거기에 내가 단 댓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번역이 창작에 비해 쉽다고 생각하는 건 번역을 시작했을 때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번역을 가볍게 여기는 인식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에는 동감한다.

생각해보니 저 말은 번역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자조적으로 나온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불만은 번역료가 짜다는 것이고 댓글을 단 분이 말하는 번역가의 처우도 그런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번역료는 왜 번역가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오르지 못하는 걸까?


과연 번역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번역료 인상을 막고 있을까? 그런 면도 없진 않다. 어떤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존중도가 그 수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우리 주변의 많은 직업을 보면 알 수 있다(다만 직업의 귀천에 대한 쓸데없는 오해를 부를 수 있어 여기서 특정한 직군을 예로 들지는 않겠다).


하지만 대중이 번역을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로 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번역료가 박한 이유가 다 설명되진 않는다. 번역가에게 돈을 주는 것은 일반 독자가 아닌 출판사이고, 출판사 편집자치고 번역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정신이 똑바로 박힌 편집자라면).



네, 또 그놈의 불황 타령입니다

그런데 번역료는 왜 그리 짤까? 간단하다. 출판계가 불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계로 확인된다. 다음은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를 기준으로 한 최근 국내 출판 시장 규모다.


출처: e-나라지표(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648)


증감을 반복하고 있긴 해도 4년 간 시장 규모가 13% 성장했다. 그런데 불황이라고? 다음 자료를 보자. 역시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를 기준으로 한 90년대 중후반 출판시장 규모다(위의 자료와 같은 계산법을 적용하기 위해 원자료의 수치에 2를 곱했다).


출처: 이임자, <출판산업의 현황과 발전방안>, 2002, 산업연구원.


보다시피 시장 규모가 IMF 직전에 정점을 찍고 폭삭 주저앉았다. 최대치는 97년 4조 764억 원이다. 2018년 우리 출판 시장의 규모는 3조 3,262억 원이니까 20년이 지났어도 최전성기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설령 1997년과 같은 규모가 된다고 해도 좋아할 일은 아니다. 그 20년 사이에 우리나라 경제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18년 한국의 GDP는 다음과 같다.


1997년: $5,575억

2018년: $16,190억


1997년부터 2018년까지 GDP가 무려 3배나 증가했다. GDP 증가율을 반영하면 출판 시장이 1997년과 같은 수준이 되려면 약 12조 원 규모가 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3.3조에 불과하다. 회복은커녕 1/4로 쪼그라든 셈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책이 안 팔리니까. 왜 안 팔릴까? 간단하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었으니까. 통계청에서 조사한 독서인구 통계를 보자.


출처: e-나라지표(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694)


2010년대 들어 독서인구는 18퍼센트 감소했고 1인당 평균독서권수는 전체 인구로 따졌을 때 42퍼센트, 독서인구만 따졌을 때 30퍼센트 줄었다.


그 이유야 뻔하다.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이 생겼으니까.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의 보급으로 지하철에서든 어디서든 책을 안 읽어도 시간을 보낼 거리가 많아졌다. 더군다나 글을 읽는 것도 꼭 책을 통할 필요가 없다. 텍스트에 대한 갈증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웹소설 등으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불황의 끝? 안 올걸요?

이렇게 책의 위상과 인기가 하락하는 흐름에 반전이 생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예전에는 한국인이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이제는 주 5일제가 정착된 지 오래고 노동 시간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책보다 재미있는 게 많으니까 ‘안’ 읽는 것이다. 전쟁으로 전국의 통신망이 파괴되지 않는 한 책이 예전과 같은 위상을 되찾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책 읽는 사람이 줄면 출판사가 책을 낼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도 당연히 줄어든다. 그러면 딸린 식구들에게 주는 돈도 줄어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내 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일꾼들에게 삯을 두둑이 주는 지주는 동화 속에나 존재한다. 존중은 해줄 수 있지만 돈은 선뜻 줄 수 없다. 당장 출판사 직원들도 박봉에 시달리는 걸 보면 번역료를 높여줄 여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번역가는 날로 늘어난다. 예전과 달리 번역 아카데미, 대학원이 활성화되어 꾸준히 신진 번역가가 배출된다. 내가 속한 바른번역에서 운영하는 글밥 아카데미를 보자면 연간 3회 진행되는 영한 출판번역 실전반의 수강생이 회당 45명, 총 135명이다. 그중 20퍼센트만 번역 시장에 나온다고 해도 매년 약 25명. 그 외의 아카데미와 번역대학원까지 합하면 못해도 영한 번역가만 연 7-80명은 배출될 것이다.


그 수가 적은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성 번역가들도 일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번역가의 공급은 늘어나는데 번역가에 대한 수요도 그렇게 늘어나고 있을까? 아래의 표를 보자.


출처: <KPIPA 출판산업 동향(2015 하반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


보다시피 연간 발행되는 번역도서의 수는 10퍼센트 정도의 증감을 보이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번역가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수요가 일정한데 공급이 늘어난다면 가격이 그대로 유지되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러니 번역료 인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균 번역료만 아니라 개별 번역가의 번역료도 마찬가지다. 경력이 쌓이며 몸값이 아무리 오른다고 한들 상한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책 한 권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액의 번역료를 받는 번역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일 뿐이다. 나머지 번역가는 오늘도 번역의 즐거움과 돈벌이의 고단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불황의 시대, 번역가가 살 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역을 하지 말란 소리인가? 그건 아니다.


다만 번역가로서 소득에 대한 기대치는 낮출 필요가 있다. 번역으로 부자가 될 생각은 하지 말자. 차라리 로또 1등, 아니, 2등이라도 되는 게 더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번역가가 외벌이로 다른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번역으로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겠구나, 딱 그 정도의 수입만 기대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그렇다고 평생 쪼들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번역 외의 수입원을 만들면 된다. 내가 번역가 지망생과 신진 번역가들에게 권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번역에만 의존하지 말 것!


부업(혹은 겸업)도 좋고 투자도 좋다. 번역이 아니라도 돈이 들어올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집중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번역이 더 잘 된다. 번역을 잘하면(그리고 운이 따른다면) 번역료가 조금씩이나마 오른다. 그러면 설령 고단할지언정 번역이 미워지진 않는다.


나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다. 일단 남의 글로만 아니라 내 글로도 돈을 벌기 위해 브런치와 인스타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올초에 첫 저서를 출간했다. 비록 출간으로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새로운 수입원을 마련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한편으로는 요즘 내 인생의 낙이 증권사 앱을 켜는 것이다. 몇 년간 소소하게 주식에 투자하다가 작년 말 미국 주식시장에 들어가면서 투자 규모를 대폭 키웠다. 그 덕에 현재 평가수익이 책 한 권 번역료쯤 된다.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역시 번역이 아니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뿌듯하다.


위의 두 문단을 끝내는 말을 보자. ‘만족한다’와 ‘뿌듯하다’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감정은 번역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번역은 정신노동이고 정신은 감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신력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말이 있다는 건 정신력으로 그런 감정을 이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감정은 최소화하고 되도록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야 번역도 잘 나온다. 다시 말해 정신이 건강해야 번역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신 건강을 위해 번역료 인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버리고, 번역 소득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번역 외의 소득원을 만들자.


언젠가 유명한 번역가가 되고 부자가 되는 꿈을 꾸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마음의 절반을 꿈으로 채웠으면 나머지 절반은 현실 감각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엇나가지 않고 목표를 향해 굴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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