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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Sep 15. 2020

글쓰기 모임을 진행해보지 않겠냐고요?

나의 글쓰기 모임 구상과 비열정적 선택에 대하여

[brunch]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한 달 전쯤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주선하는 모 플랫폼에서 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을 보내왔다. 나를 글쓰기 모임의 리더로 초대하고 싶은데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답장으로 내 연락처와 편한 시간을 알려줬다.


전화를 기다리며 혼자서 모임을 구상해봤다. 모임명은 ‘손 쉴 틈 없는 자동기술적 글쓰기’. 모임 방식은 간단했다. 일단 다 함께 “나는 글 쓰는 기계다. 나는 멈추지 않고 쓴다”라는 구호를 삼창한 후 정말로 손을 멈추지 않고 40분에서 1시간 정도 쭈욱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중 몇 사람의 글을 함께 듣고 의견을 나눈 후 모임을 파한다.


그 취지는 글을 완성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만 하고 완성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하나다. 생각이 많아서. 글을 쓰면서 자꾸만 생각을 하니까 끝까지 못 쓰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글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을 문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글을 쓸 때 굳이 안 해도 되는 생각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방금 쓴 문장 좀 어색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너무 두서가 없는 느낌인데?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지?

사람들이 읽고 비웃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아비판이다. 글을 쓰는 동시에 그 글을 비평하는 것인데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글을 그렇게 자꾸만 까내리니까 글이 못나 보이고 자신의 필력이 형편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중도에 글을 엎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면 남는 게 없다. 글을 썼으면 글이 남아야 하는데 ‘난 글을 못 써, 봐, 또 한 편도 못 썼잖아’라는 자괴감만 덩그러니 남는다. 근데 또 글은 쓰고 싶단 말이지. 그래서 몇 시간 혹은 며칠 후 다시 쓰지만 또 스스로 깎아내리다가 자존감에 상처만 내고 포기한다. 악순환이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쓸 데 없는 생각을 안 하고 쓰면 된다.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혹은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된다. 그러면 내면의 비판자가 끼어들 틈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물론 그 글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쓰다 만 글은 애초에 완성도를 논할 주제조차 못 된다.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모임 구상이었다.


이윽고 전화가 걸려왔다. 플랫폼 측에서는 내게 번역 공부 모임을 제안했다. 나는 아무 고민 없이 거절했다. 번역을 효과적으로 공부하려면 번역 원고에 대한 첨삭 피드백을 받는 게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 남의 원고를 보고 일일이 피드백을 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혹시 생각하시는 모임 있나요?”


나는 나의 구상을 솔직히 얘기했다. 어깨가 굳었다. 누군가에게 글쓰기 모임의 구상을 밝힌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는 것 같네요.”


반응이 좋았다. 내 기획이 통했다니 어깨가 풀렸다.


“그런데…”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시간이었다.




모임은 서울, 내가 사는 곳은 진주. 고속버스를 타면 3시간 30분, KTX를 타면 3시간 30분 거리. (오타가 아니라 고속철도라는 말이 무색하게 KTX와 고속버스의 소요 시간이 동일하다.) 거기에 집에서 터미널이나 역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30분, 서울에 도착해서 모임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을 1시간으로 잡으면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 거리였다.


저녁에만 있는 평일 모임은 내가 돌아오는 차편이 없어서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주말 시간표를 메일로 받고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분명히 내게 좋은 기회였다. 글쓰기 모임의 진행자라니. 장차 내가 더 큰 모임을 이끌거나 강연자로 나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모임의 참가자들이 내 팬 내지는 응원군이 된다면 역서가 됐든 저서가 됐든 내 책의 판매량 증가도 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역자 약력에 글쓰기 모임 운영 중이라는 한 줄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독자와 편집자가 느끼기에 천지차이다.


내가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지금까지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참석해본 적조차 없기 때문에 부담스럽긴 해도 십여 년 전 교회 오빠 시절에 장기간 소모임을 이끈 경험이 있고 또 연극 동호회 활동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많이 훈련했기 때문에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주말에 혼자 아이를 보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주말 모임을 이끌기 위해 서울에 다녀오려면 하루 종일 아내가 독박육아를 해야 했다. 애를 혼자 보는 것은 둘이 볼 때보다 두 배가 아니라 서너 배는 힘들다. 단 한순간도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21개월인 우리 애는 거실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져서(미끄럼 쪽으로 말고 계단 쪽으로) 아빠 간을 철렁하게 만들어 놓고도 틈만 나면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구른다. 그러다 아빠가 난간 잡으라고 소리를 치면 그제야 씨익 웃으면서 잡는 것이다. 엊그제는 혼자 들어가지 말라던 욕실에 들어가서 미끄러져서는 엉엉 울었다.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주 5일 회사에서 일하고 고단한 아내에게 주말인데도 또 종일 아이를 맡기자니 미안했다. 모임이 격주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진행자가 된다면 한 달 중 아내가 아이를 전담해야 하는 날은 2~3일이었다.


누군가는 30일 중 겨우 2~3일인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30일이 아니라 8~10일 중 2~3일이다. 말했다시피 평일 육아와 주말 육아는 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평일 육아가 1000미터 달리기라면 주말 육아는 42.195킬로미터 마라톤이다. 따라서 주말 8~10 중 2~3일로 잡아야 한다.


만일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아내는 주말 중 약 30퍼센트를 독박육아로 날려버려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양심이 있다면 나의 주말 중 최소 20퍼센트는 아내를 쉬게 하고 독박육아를 감수하는 게 도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어깨가 뻐근하고 가슴이 무지근했다. 둘이 해도 힘든 주말 육아를 독박이라니… 아내에게는 물론이고 (양심상 독박을 써야 할) 나 자신에게도 할 짓이 아니었다.


메일을 썼다.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저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짐작하다시피 거리 때문에요. 서울에 다녀오려면 하루를 모두 써야 하는데 주말이라고 해도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 않네요. 날려버리기 아쉬운 기회이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제안 해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다음에 또 좋은 일로 인연이 닿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계발서들은 열정을 강조한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며 자신을 계발하라고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따르면 나는 주말에 좀 힘들어도 서울에 가서 모임을 하는 것으로 내 입지를 넓혀야 했다.


그런데 나는 별로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열정보다는 편함이 좋다. 원래도 그렇지만 육아로 쉴 틈이 없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열정 대신 덜 힘든 주말을 택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할까? 아니다. 오히려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모임이 있는 주말만 아니라 평일에도 주말의 후폭풍을 미리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글이야 앞으로도 계속 쓸 테니까 뭐가 됐든 좋은 기회는 또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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