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유명해져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이 있다. 자기를 찾는 사람이 많을 때 그 기회를 이용해 돈을 벌든 유명해지든 뽕을 뽑으란 말이다.
여기 물 들어올 때 노를 놓아버린 인간이 있다. 나다.
최근에 내 브런치에도 물이 좀 들어왔다. 내가 6월부터 글쓰기가 점점 뜸해지다가 8월에는 아예 글을 한 편도 안 올리고 브런치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간에 구독자가 꾸준히 늘었고 특히 8월에 가장 많이 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즈음에 출간된 역서 ⟪초집중⟫의 역자 프로필에 내 브런치가 소개됐고 또 얼마 후 저서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가 리디셀렉트에 등록되자마자 메인 페이지의 '한 주간 별점 베스트' 섹션에 뜬 게 주효했던 것 같다.
그때 노를 더 저었어야 했다. 글을 더 썼어야 했다. 아마 그때 내 브런치에 들어왔다가 어라, 요즘 글 안 쓰다 보네, 하고 돌아간 사람이 꽤 될 것이다.
근데 왜 글을 안 썼을까? 답은 간단하다. 브런치가 싫어서.
내가 7월에 써 놓고 공개하지 않은 글이 있다. 8월 한 달간 브런치를 쉬겠다는 글이었다. 브런치 하는 게 즐겁지 않아서 내가 브런치를 정말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달간 딱 끊어보겠단 내용이었다.
나는 브런치가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브런치가 좋은데 싫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좋은데 브런치팀의 운영 방식이 싫다.
브런치 메인에 늘 비슷한 주제의 글이 올라오는 게 싫고(<브런치에는 있고 인스타에는 없는 것> 참고), 이용자의 제안이나 바람에 귀를 닫고 사실상 개선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싫다(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글을 써보려 한다). 내가 볼 때 작가들의 잠재력을 담기에 현재 브런치는 그릇이 너무 작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맞다. 브런치가 싫으면 브런치를 떠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쿨하게 절 문을 나서지 못하고 질척거리며 기껏 한다는 게 명절에 남의 집 귀한 자식들(=브런치팀) 욕하는 글이나 쓰는 것이다.
왜 못 떠날까? 이 만한 플랫폼이 또 없기 때문이다. 길고 진지한 글을 올려서 출판계 관계자와 독자들에게 나를 노출하기에는 브런치에 견줄 곳이 없다.
나는 요즘 인스타도 병행 중이고 사실상 인스타가 주력이지만 인스타는 태생이 사진 공유 플랫폼이다 보니 긴 글을 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네이버 블로그는 광고 글들이 꽉 잡고 있다. 페이스북은 브런치처럼 한번 올린 글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노출되고 읽히는 구조가 아니다. 트위터는 애초에 짧은 글을 순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티스토리 블로그는 아예 노출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결국엔 브런치다. 하지만 브런치가 싫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있긴 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유명해져야 한다.
절 안팎에서 입김 좀 분다 하는 중이 돼야 한다. 그래야 싫은 소리 하면 주지 이하 절 식구들이 귀 기울여 듣는다. 절을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붙잡으려 달려든다.
지금 나는 듣보잡 땡중이다. 내가 브런치를 떠나겠다고 해봤자 아쉬워할 것은, 구독자 970명 중에서 브런치 계정을 방치 중인 수백 명을 빼면 사실상 얼마 안 남는 실구독자와 브런치 친구들 뿐이다. 날 따라 떠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들고일어날 사람도 없다. 당연히 브런치에 말발이 안 선다. 브런치팀은 내가 브런치를 접는다고 해봤자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구독자가 5만 명쯤 돼서 글 하나 쓰면 라이킷이 1천 개쯤 박히고 댓글이 500개씩 달리는 인플루언서라면? 내가 눈썹 한 번 까딱해도 브런치팀이 움찔하지 않을까?
사실 그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여차하면 브런치를 떠나도 될 것이다. 다른 곳에 정착해도 구독자들이 따라와서 팔로우할 것이다. 내 말 안 들어주면 확 떠나버린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진심은 무섭고 힘이 세다.
그러니까 브런치팀이 싫어도 브런치를 떠날 필요가 없으려면 역으로 브런치가 싫어서 떠나도 상관없을 만큼 유명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김영하 작가급이라면 브런치팀에 끗발이 엄청나게 설 것이다.
하지만 지금 브런치에서, 더 넓게는 출판계에서 내 영향력은 김영하 작가의 발가락 수준이나마 된다고 하면 감지덕지다. 난 여전히 좁밥이다. 역서가 내 이름발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4월에 낸 저서는 아직 1쇄가 다 안 나갔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김영하의 무릎까지, 허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브런치 열심히 하고 인스타 열심히 해서 내 책이 나왔다 하면 불티나게 팔릴 만큼 두터운 팬층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브런치를 통해 인스타 팔로워가 늘고 또 인스타 통해서도 브런치 구독자가 느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올 3월에 인스타를 개설하면서 팔로워가 1천 명이 되기 전에는 브런치에 주소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만고의 쓸데없는 다짐을 했다. 개인적으로 혹은 댓글로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내 브런치 프로필에 넣거나 본문에 링크를 걸진 않았다.
현재 인스타 팔로워 약 950명. 이쯤 하면 됐다. 이젠 두 플랫폼의 시너지를 고민할 때다.
그래서 내 인스타를 공개한다.
https://instagram.com/highlight_kim
인스타에는 브런치에 올리지 않는 책 리뷰를 올리고 있다. 글을 많이 다듬지 않고 날것의 느낌을 주는 쪽으로 쓰고 있는데 반응이 꽤 괜찮다. 그 영향으로 브런치에 쓰는 글은 물론이고 곧 종이책으로 발행될 잡지에 연재하는 글마저 덜 다듬게 됐는데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줄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변화가 반갑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들어와서 내 '솔직 리뷰'가 취향에 맞는지 확인해보시길. 참고로 10월 5일 아침까지 소소한 이벤트도 진행 중! (참고2로 이달 안에 유튜브도 진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