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작가는 어떻게든 자신을 알려야 한다
아니요. 전 브런치북 만들 콘텐츠가 없어서요. 그리고 브런치팀 싫어서 별로 응할 마음도 없어요.
지난 9월, 이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계획이냐는 코붱 작가님의 물음에 내가 한 대답이다. 진심이었다. 그때는.
나는 브런치북 만들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은 모두 그때그때 생각나는 글감을 갖고 썼기 때문에 소재가 중구난방이다. 오죽하면 매거진명이 <막썰어글>일까. 그나마 <배운 게 번역질인데> 매거진은 번역이란 일관된 주제가 있지만 이미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에 실은 내용이 많아서 브런치북을 만들 분량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북이란 틀에 담을 일관성 있는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브런치팀 싫어서 응모 안 한다는 말도 진심이었다. 내가 브런치팀을 싫어하는 건 브런치를 소수만 꿀 빠는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수만 명의 브런치 작가 중 10명만 혜택을 본다. 연중 다른 단체와 제휴한 공모전이 몇 번 있긴 한데 그 또한 소수에게만 영광이 돌아간다. 그리고 브런치 메인에 에디터 추천 글로 노출되는 것도 대부분 브런치팀의 일관된 취향(결혼, 육아, 딩크, 비혼, 요리, 여성, 여행,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감성 에세이)에 맞는 글들이다. 그밖에는 딱히 브런치팀에서 작가들에게 해주는 건 (내가 보기엔) 없다.
그럼 다수가 꿀 빨게 할 방법이 뭐냐고? 모른다. 그럼 소수가 꿀 빠는 게 나쁜 거냐고? 브런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뭐 세상이 다 그렇지. 근데 왜 싫냐고? 내가 그 소수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내가 무슨 예수님도 나 빼고 노는 거 꼴 보기 싫어하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거지.
여하튼 이런 이유로 나는 이번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에 브런치북을 급조해서 응모했다. 사연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스타에 올릴 ⟪킵고잉⟫의 리뷰를 썼다. 이 책에서 하는 말은 작은 사업을 망해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갈아넣지 말고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도록 작게 일을 벌리다 보면 9번 넘어져도 10번째쯤에는 뭐라도 된다는 거다.
소파에 누워서 폰으로 리뷰를 다 쓰고(나는 누워서 쓸 때 제일 솔직하고 편한 글이 나온다) 요즘 모니터를 새로 살까 고민 중이라 좀 알아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꼭 당선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써 놓은 글들 있는데 어떻게든 브런치북 하나 만들어서 응모하면 심사하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단 한 편의 글이라고 읽을 테니까 나를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겠어?'
그랬다.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꼭 당선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두고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수단으로 쓴다면 한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도전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쓸 것도 없다. 어차피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면 나란 작가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글 몇 편 골라서 뚝딱 만들면 끝이니까.
그래서 바로 실행했다. 작년에 썼던 <오늘의 말씀 묵상> 매거진(종교와 관련 없고 매일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소재로 자유롭게 쓴 글들)에서 너무 개인적이지 않고 남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글 21개를 때려넣어서 같은 제목의 브런치북을 만들고 30분 만에 응모를 끝냈다.
하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이 글들로 당선은 무리겠지만 편집자가 나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원고든 번역이든 의뢰한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그러니까 실패해도 괜찮다. 어차피 30분 만에 만든 것 그냥 30분 날렸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직 마감일인 11월 1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얼른 브런치북을 만들어 응모했으면 좋겠다. 다들 어차피 써놓은 글 있으니까 이 기회에 나를 출판계에 알리겠다는 목표로 말이다. 우리 같은 무명의 글쟁이들은 뭐라도 나를 알릴 창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노력이 모여서 유명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일단 내가 유명해져야 증명할 수 있겠지. 여하튼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글로 꼭 응모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