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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Dec 07. 2020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일하기 위한 조건 4가지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일해보면 어떨까, 궁금해하는 주부 혹은 예비 주부가 많다. 프리랜서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는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을 것 같아서 하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13년차 프리랜서 출판번역가이고 남자지만 아내가 밖에서 일하고 내가 집에서 살림을 본다. 그리고 현재 25개월 아이를 내가 등하원시키고 아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내가 아이를 전담한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살려면 4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1.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다녀야 한다.
집에 애가 있으면 일이 잘 안 된다. 우선 혼자 애도 보고 일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사실상 일은 포기해야 한다. 아이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매순간 부모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는 것도 같이 놀고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자는 것도 일단 잠들 때까진 같이 누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애를 봐주고 본인은 일만 한다면 사정이 좀 낫겠지만 다른 방에서 애 보채는 소리,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놀자고 하는 행동 등이 집중력을 적잖이 해친다.


기본적으로 일은 아이가 없을 때 하는 게 맞다.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서 10시부터 4시까지 일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날은 1시간 정도 추가로 일한다.

2. 언제든 육아 SOS를 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의 생명은? 칼 같은 마감 엄수다. 마감을 못 지키면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으면 일이 끊긴다. 근데 사람이란 혼자 일하면 늘어지기 십상이라 마감일까지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마감일 며칠 전부터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열일 모드에 들어간다.


나로 말하자면 그간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서 마감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별로 없었으나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일정이 넉넉해도 마감 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곤 한다. 애 키우는 게 고단해서 작업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감이 닥쳐서 급할 때는 누가 와서 애를 봐줘야 한다. 그래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래서 근처에 언제든 애를 보러 와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애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전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로 어머니나 결혼한 여자 형제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장모님이 차로 1시간 거리에 사셔서 아내나 내가 일 때문에 바쁠 때면 며칠씩 와 계신다. 지난 달 말에는 내 마감 때문에, 지난 주에는 아내가 기획서를 쓰느라 주말도 없이 야근을 해야 해서 장모님 찬스를 썼다. 덕분에 나도 아내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3. 가사와 육아를 배우자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원래 모든 일이란 고단한 것이기 때문에 프리랜서도 그날의 일을 끝내고 나면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다. 그래서 저녁이면 쉬고 싶다.


하지만 애 키우는 집에서 애가 잠들기 전까지 쉬는 시간이란 허락되지 않는다. 애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집 정리하고…… 저녁 시간도 노동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것을 한 사람이 부담하자면 금방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그것은 배우자와 아이에 대한 짜증으로, 다시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퇴근 후 노동량을 최대한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나도 고생하지만 저 사람도 고생하고 있다는 걸 옆에서 눈으로 보면 동지애가 생기면 생겼지 쉽게 원망이나 미움이 쌓이진 않는다. 그만큼 아이에게도 덜 인색해진다.


우리 집은 아내가 퇴근하면 내가 저녁 차리고 아내가 아이 밥 먹이고, 내가 설거지하고 뒷정리하는 동안 아내가 애 보고, 내가 아이 물놀이시키고 씻기는 동안 아내가 집 정리하고, 아내가 씻는 동안 내가 아이 보고, 같이 양치질시키고 재우는 식으로 저녁이 돌아간다.

4. 집안일을 최대한 외주화해야 한다.
위에서 한 말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일과 육아를 병행할 때는 되도록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짜증을 덜 내고 한 번이라도 더 웃는다. 그런데 일도 육아도 보통은 누가 다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노동량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가사는 가능하다.


일단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집을 예로 들면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애벌 설거지는 내가 한다), 빨래 건조는 건조기가 한다.


그리고 돈을 주고 타인의 노동을 사는 방법도 있다. 우리 집은 반찬을 거의 사 먹고 배달 음식도 자주 먹는다. 그러면 요리와 설거지에 뺏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또 아예 요즘은 앱으로 가사도우미를 부를 수 있으니 그렇게 힘을 비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족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면 가사에서 '손맛'이랄까 정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점점 감정이 상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가족 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것이다.



이상이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물론 이 4가지 조건을 다 충족한다고 해도 그 삶이 절대 수월하진 않다. 육아란 원래 고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해볼 만은 하다. 반대로 위의 조건을 충족 못 한다고 육아와 프리랜서 노동을 병행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척 고단한 삶이 될 것 같다. 결국 어느 쪽이나 힘들지만 얼마나 힘드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굳이 돈을 안 벌어도 된다고 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솔직히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 지금은 육아와 일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나 어느 한쪽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별수없다. 내가 일을 안 하면 아내는 등골이 빠질 테니까. 지금의 우리는 서로의 가랑이와 등골을 적당히 보호해주고 보듬어주는 사이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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