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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23. 2021

웹소설 쓰다 망한 썰 푸는 책


남 망한 얘기는 언제 봐도 재미있죠.


타일작이 뭔지 아세요? 웹소설계에서 깔아주는 작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 우리 학교 다닐 때 그런 말 많이 했잖아요.


“야, 너 등수 올라가라고 내가 바닥 깔아줬다.”


그거예요. 성적이 바닥을 기는 작품. 전혀 주목 못 받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품. 한마디로 폭망작.


이 책은 어쩌다 보니 타일작만 쓴 작가의 수기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회사 다니면서 새빠지게 썼는데 폭망 -> 또 폭망 -> 다시 폭망 -> 이게 소설이라면 이쯤에서 뭔가 한 방 터졌겠지만 인생은 소설이 아니니까 또 폭망.


막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고생한 것도 아니고 두 번째 작품부터는 출판사도 붙었어요. 근데도 될 놈 될 안 될 안일까요, 참 끝까지 성적이 안 나옵니다. 네, 처음부터 끝까지 망하는 얘기예요.


그런 걸 왜 읽냐고요? 말했잖아요, 남 망하는 얘기는 언제 봐도 재미있다고요. 안 그래요? 아, 물론 그냥 무작정 망하면 안 돼요. 망할 땐 망해도 뭐라도 희망이 있어야죠. 그래야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하죠.


이 책이 그래요. 저자는 소설을 쓰는 족족 다 망해 놓고 끝에 가서…. 뭐가 되는데요, 그 뭐가 뭔지는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 안 할게요. 여하튼 희망이 있으니까 저지를 수 있는 짓을 저질러요. 독자가 휴, 다행이야, 아니, 다행 아닌가, 뭐 어쨌든 작가님 응원할게요, 하는 마음이 들게요.


저는 이 책이 웹소설 작가의 99퍼센트까진 아니어도 최소 80퍼센트가 처한 현실이 아닐까 싶어요. 원래 예술 분야가 다 그렇잖아요. 최상위 1퍼센트는 떼돈 벌고, 그 밑에서 한 20퍼센트는 그래도 뭐 그럭저럭 잘 벌고, 나머지는 그냥 깔아주고…


이 예술이란 게 내가 그 상위 1퍼센트에 들겠다는 자신감과 각오가 있거나 그냥 돈 못 벌어도 내가 좋아서 한다는 자기만족이 없으면 버티기도 힘들고 애초에 발 들여놓지도 말아야 할 분야가 아닌가 싶어요. 저도 비록 완전 창작은 아니지만 번역도 글 쓰는 직업이니까 그쪽 계통에 반쯤 발을 걸친 사람으로서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번역계에서 몇 퍼센트냐고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 바닥은 저 위에 올라가도 어차피 돈 많이 못 버는데...


그래서 소설 쓰려고요. 아니, 방금 웹소설 작가의 80퍼센트가 폭망 테크 탄다는 소리 해놓고 지는 소설 쓰겠다니 무슨 자신감이냐고요?


세상에는 꼭 지 좋은 일만 하고 살려는 인간들이 있죠. 걔네들 특징이 남들은 다 망해도 자기는 잘될 줄 알아요. 제 얘기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할 것 같아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그런 사람 꽤 있을 거고요.


그런 사람, 아니, 우리의 고단한 현실과 마음 속 한 줄기 희망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전국 독립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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