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스모스⟫를 읽고
완독의 기준이 어떻게 되시나요? 전 본문만 끝까지 읽었으면 완독으로 쳐줍니다. 정독 안 하고 대충 읽었어도요. 그리고 추천사나 해설 같은 거 안 읽어도 완독으로 칩니다. 쓴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거 재미없거든요. 어차피 재미로 책 읽는 건데요.
같은 이유로 원래는 역자 후기도 안 읽었어요. 번역가가 된 지금은 동료 번역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혹은 의리로 읽습니다.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읽은 역자 후기 중에서 제일 긴 역자 후기(170쪽)라고 할 수 있어요.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아니라 역자 홍승수의 이야기죠.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에 대한 역자의 평가, 번역 뒷이야기, 한국 천문학계와 교육 풍토에 대한 견해가 실려 있습니다. 맨 끝에 ‘홍승수 님은 그저 빛! 빛! 빛!’이라고 찬양하는 제자들의 홍비어천가가 실려 있는데 솔직히 너무 낯간지러워서 그냥 뺐으면 좋을 뻔했어요.
팟캐스트를 그대로 녹취한 거라 중간중간 출연자들 노가리 까는 부분도 그대로 나오고 해서 현장감 있고 재미있습니다.
대신 어떤 깊이 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다룬 강연을 글로 옮긴 거라서 어쩔 수 없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요.
제가 번역가이다 보니까 번역 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웠는데 원래는 이분이 과학자면 연구에 매진해야지 뭔 방송을 하고 그래, 하면서 세이건을 별로 안 좋게 봤대요. 근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감화를 받았다는군요. 저도 그런 경험 있거든요. 번역하다가 저자가 좋아지는 경험 말이죠.
그리고 ⟪코스모스⟫ 읽어 보면 온갖 문헌에서 인용하는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읽을 땐 몰랐는데 이 역자 후기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코스모스⟫ 번역판 출간된 게 2000년대 초반이에요. 지금이야 그런 거 나오면 구글에서 검색 때리면 어지간한 건 다 찾을 수 있지만 그땐 아니었을 거란 말이죠. 와 근데 그걸 다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 가며 번역했을 걸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었어요. 역자가 대학 교수라서 식당만 가면 그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이 책은 ⟪코스모스⟫ 해설서는 아닙니다. 짧게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주긴 하는데 그 분량이 많진 않아요.
그래서 ⟪코스모스⟫를 읽기 전이 아니라 완독한 후에 정리하는 기분으로, 또는 뒷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글쎄요. 칼 세이건이나 ⟪코스모스⟫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별로 재미없을걸요?
그러니 여러분 ⟪코스모스⟫(약 700페이지)를 읽으십시오. 난 읽었음! (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