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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Aug 09. 2018

대중은 왜 오역에 분노하는가

구글에서 제공하는 ‘알리미’ 서비스에 키워드를 입력해 놓으면 하루에 한 번씩 그 단어가 들어간 새 콘텐츠, 주로 신문 기사를 취합해서 메일로 알려준다. 나는 여기에 내 이름과 ‘번역’을 넣어 놓았는데 내 이름으로 알림은 거의 안 오고 번역의 경우에는 거의 매일 알림이 날아온다.


어제 온 알림에는 선배 번역가가 신문에 실은 오역에 대한 칼럼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오역 논란 이후 칼럼이나 인터뷰의 형식으로 이에 대한 기사가 적잖이 알림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태에 대해 번역가들이 하는 말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1. 번역가도 사람인 이상 오역이 없는 번역은 불가능하다.

2. 번역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해서 안 나올 오역도 나올 수 있다.


2번에 대해 부연하자면 영상 번역의 경우, 영화사에서 번역가에게 온전한 영상을 제공하지 않아서 대본에 의지해 번역하다 보니 문장의 의미를 오해할 수 있고, 출판 번역의 경우에는 번역료가 적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번역가가 속도를 낼 수밖에 없어서 오역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과연 대중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만약에 내가 번역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말이 나올 것도 같다. “니네만 어렵냐?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았어? 못하겠으면 징징대지 말고 관둬!”


너무 날 선 반응이 아니냐고? 내가 보기엔 실제로 번역계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청와대에 번역가를 퇴출시키라는 청원이 올라오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 돈 받고 거기 왜 붙어 있겠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실력 빤하지” 하는 조롱의 말도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번역에 대한 글은 호평보다 혹평이 훨씬 많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이렇게 매섭게 분노하는 것일까? 나는 번역계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그동안 관객과 독자의 불평을 유야무야 넘겨버린 세월만큼 쌓인 분노다. 돌아보면 영화계든 출판계든 오역 논란이 발생했을 때 번역 당사자가 전면에 나서서 해명이든 사과든 확실하게 하고 넘어간 적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아무리 오역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져도 당사자는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만 다른 번역가들이 대중의 눈에는 동종 업계 종사자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해명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간혹 당사자가 직접 답한다고 해도 “내가 실수한 부분도 조금 있긴 하지만 해석의 차이라 볼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지적이 과한 부분도 있다”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말에 그쳤다. 지적하는 쪽에서는 문장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조목조목 따지는데 답하는 쪽에서는 마치 그런 것에 일일이 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대충 퉁치고 넘어가니까 비판이 비난이 되고, 의문이 불신이 되고, 불만이 분노가 되는 것이다.


오역 논란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번역가의 진정성 있는 사과 혹은 설득력 있는 해명이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깨끗하게 인정하기를, 지적이 틀렸다면 이러저러해서 틀렸다고 설득하기를, 지적이 옳다면 이러저러한 연유로 원문을 오해했다고 설명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껏 번역계는 그런 대중의 마음을 몰랐든가 모르는 척해 왔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대중이 오역에 대해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보이는 게 당연하고, 번역계에서 지금 같은 대응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똑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한강의 소설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한국에서 자신의 번역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지면을 통해, 또 직접 한국까지 와서 자신의 번역을 변호한 것은, 비록 그녀의 답변이 논란을 해소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언젠가는 오역 논란에 휘말릴지 모른다. 오역이란 것은 번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니까 모든 번역가에게 그런 위험성이 있다. 부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오역 논란이라는 게 번역가가 유명해지거나 작품이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누리는 유명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맨날 "뭐 번역하셨어요?"라는 물음에 "말해도 모르실 텐데요"라고 대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역을 지적받더라도 내 역서가 초대박을 터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그런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내 번역에 대한 지적에 조목조목 답하며 내가 틀렸으면 틀렸다고 수긍하고, 내가 맞으면 이러저러해서 맞다고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번역은 절대 날림이 아니니까 내게는 그것을 변호할 권리가 있고 또 그게 나와 내 번역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다른 번역가의 작업물이 날림이라는 말은 아니다. 자기 이름 걸고 나가는 번역을 날림으로 할 만큼 간 큰 번역가가 얼마나 될까). 물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당혹스럽고 망신스러워서 쥐구멍으로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그닥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건 닥쳐봐야 아는 일이다.


그러니 내 말이 진짜인지 뻥카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일단 내 역서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시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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