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Oct 09. 2022

글쓰기가 막막하다면 프톨레마이오스적 글쓰기를

나를 레벨업하는 페르소나 SNS 글쓰기 (7)

글 쓸 때 개요부터 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왜 그거 있잖아요 종이에 서론, 본론, 결론이라고 공간 나누고 각 부분에 어떤 내용 쓸지 계획하는 거. 학교에서 글 쓸 때 꼭 쓰라고 한 거. 응 뭐 개요 짜는 게 꼭 나쁘진 않아요. 근데 그게 안 맞는 사람도 있어. 그걸 어떻게 아느냐?


여행 좋아하세요? 난 안 좋아해요. 집에 있으면 만고에 편한데 뭘 바깥에 나가서 고생해. 짐 싸는 것도 귀찮고 비행기표랑 숙소 알아보는 것도 귀찮아 다 귀찮아. 그래서 여행 잘 안 다니고 다녀도 대충 다녀요. 계획 같은 거 안 세운단 말이지. 서른 살 때 동생이랑 한 달 유럽 여행 떠날 때 출입국 비행기표랑 첫 숙소만 예약하고 아무 계획 안 세웠어요. 그냥 그날 그날 가이드북 보고 꼴… 끌리는 대로 돌아다녔지.


원래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만 여행할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프랑스가 너무 추워서 급히 스페인으로 갔어요. 그렇게 즉흥적으로 여행하면 돈이 줄줄 샙니다. 숙소고 기차표고 미리 예약 안 하면 할인 혜택이 전혀 없으니까. 근데 어쩔 수 없어. 생겨먹길 이렇게 생겨먹었거든. 지금도 여행 갈 때는 아내가 짐 다 싸요. 계획도 아내가 세워. 그럼 난 뭐 하냐? 아내가 세운 일정에 맞춰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합니다. 검색 능력 하나는 또 기가 맥히거든 내가.


지금 내 얘기에 공감하세요? 여행할 때 계획 세우는 거 딱 질색인 거? 그럼 P예요. 내 말에 공감 못 하고 일일이 계획 세워야 속이 풀리는 사람은 J고요. 네 맞아요 MBTI의 P와 J예요.


우리 P들은 계획 세우는 거 싫어. 대충 땡기는 대로 살아야 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라고. 개요 쓰다 보면 글 쓰기도 전에 진 빠져. 아니 개요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 쓰기가 싫어져. 그러니까 개요를 쓰면 안 돼요. 개요를 안 쓰고 바로 글 쓰는 거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적 글쓰기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누구냐고? 몰라 그냥 P로 시작하는 말 중에 있어 보이는 말 갖다붙였엌.




프톨레마이오스적 글쓰기는 진짜 다짜고짜 쓰는 거예요. 개요 따위 무시하고 그냥 무엇무엇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만 갖고 바로 글 쓰기 시작하는 거야. 지금 이 글만 해도 그래요. ‘개요 없이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쓰자, 여행 얘기로 P와 J의 차이를 말하면 좋겠다’라는 구상 외에 아무 계획도 없이 쓰기 시작했어요.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없어도 좋아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도 좋단 말이지. 글을 쓰려고 앱을 켜거나 종이를 꺼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글감으로 글을 써도 좋아요. 여하튼 프톨레마이오스적 글쓰기는 계획 없이 쓰는 거예요.


그리고 글을 쓸 때는 그냥 쭉 써.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쓰기는 기세거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쭉쭉 밀고 나가야 해. 중간에 멈추면 쓰기 싫어지거든. 뭔가 잘못된 거 같고 이상한 거 같은 느낌이 들거든. 왠지 이번 글은 망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글쓰기란 게 그렇게 저항이 심한 행위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안 밀리려면 그냥 손을 멈추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쭉쭉 치고 나가야 해 쭉쭉.


글 쓰는 도중에 생각이 막혔다고? 그럼 잠시 멈춰도 좋아요. 하지만 이전 문장을 돌아보진 마. 내가 잘 쓰고 있나 생각하지 마. 그저 다음 문장만 생각해. 저 멀리 있는 문장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다음 문장만.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한 번에 한 문장씩만 건너가는 거야. 두 칸씩 건너다간 물에 빠져요.


나도 지금 이 글 그냥 쭉쭉 밀고 나가면서 쓰고 있어요(물론 당신이 보는 글은 그렇게 쓴 초고를 손본 결과물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왜 좋냐 하면 자기검열을 막아주거든요. ‘내가 잘하고 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의 물꼬가 막혀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문장이 잘 안 나와요. 변비 걸린 거마냥 아무리 힘을 줘도 토끼똥만큼 삐질 나올 뿐이야.


그럼 어떻게 되느냐? 중도에 포기하는 거지 뭐. 힘드니까 글을 쓰다 마는 거야. 아니면 억지로 억지로 몇 시간씩 애써서 완성은 해. 그러고는 다음번에 글 쓰려고 하면 그 고생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 쓸 마음이 싹 가셔. 그렇게 글쓰기와 작별하는 거지. 나를 레벨업할 수 있는 좋은 수단과 바이바이. 마음과 머리에 가득한 감정과 욕망과 충동과 생각을 배출할 수단과 영영 안녕.


내가 심리학자나 뇌과학자가 아니라서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글을 쓰는 도중에 자꾸만 편집자가 되려고 해요. 자꾸 돌아보고 잘못된 걸 찾으려고 해. 아니 근데 그건 일단 글을 다 쓰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일단 뭘 완성해놓고 썰든가 부수든가 해야지. 다 만들기도 전에 그래서는 이도 저도 안 된다고. 그러니까 글을 쓰는 순간에는 편집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뭉개버리고, 마구 짓밟아버리고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생각이 시키는 대로 쓰세요. 그래야 글이 완성됩니다.


왠지 문장이 이상한 거 같다고? 괜찮아. 나중에 다시 한 번 보면서 고치면 돼. 걱정하지 마. 그리고 지금 이상한 거 같아도 나중에 보면 또 괜찮다? 진짜야 내 말 믿어. 맞춤법? 좀 틀려도 돼. 그냥 써. 나중에 맞춤법 검사기 돌리면 되지.


내가 개요 짜는 걸 싫어하는 이유도 글을 쓰는 도중에 개요의 존재 때문에 편집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개요를 짠다는 건 글을 쓰기 전에 설계를 다 한단 말이죠. 그러면 설계 대로 글이 지어지고 있는지 자꾸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당신이 J다, 여행 갈 때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하면 개요를 짜도 좋습니다. 네 좋아요. 단 거기 얽매이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은 사실 우리 마음 대로 통제가 안 되잖아요.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이 날뛰기 좋아하는 망아지를 말뚝에 묶어놓으려고 해봤자 나만 고생이야. 괜히 진만 빠져.


억지로 개요에 맞춰 글을 쓰려고 하면 그때그때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놓쳐버릴 수 있어요. 이건 내 계획에 안 맞아 하고 버리거든. 근데 생각해보세요. 그런 아이디어야말로 보석 같은 게 아닐까요? 계획에도 없이 튀어나오는 것, 그거야말로 창의적인 것이고 거기서 개성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즉흥적 생각을 살려줄 때 정말 나다운 글이 나오지 않겠어요?


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그려지는 생각의 줄기를 글로 옮기는 게 나다운 글을 쓰는 길이고, 나다운 글이야말로 가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남들과 비슷한 글은 이미 남들이 써놨으니까. 그렇다고 막 ‘난 남들이 전혀 생각 못한 내용을 쓸 거야’ 하는 강박은 느끼지 마세요. 어차피 잘 안 돼. 어차피 세상에 있는 글은 대부분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해요. 우리는 모두 수많은 사람이 글이나 말로 표현한 생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앞에서 쓴 편집자의 비유만 해도 아마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나오는 비유일 거예요. 나중에 이 글이 책으로 출간되면 그때 정확히 출처를 찾아서 적을게요. 지금은 귀찮앜.


여하튼 우리가 쓰는 글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글을 풀어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때 쓰는 구체적인 표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잖아요. 나는 그게 글의 개성이고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게 재미있는 글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개요를 짜든 안 짜든 맘대로 하세요 좋아요. 하지만 일단 글이 완성될 때까지는 뒤돌아보지 말고, 그러니까 이미 썼던 문장들 돌아보지 말고 쭉쭉 달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매번 글이 한 편씩 완성됩니다. 그러면 성취감이 생겨요. 머릿속에 맴돌던 실체 없는 생각을 꽉 붙잡아서 문자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바꿔놓았으니까 얼마나 장한 일이에요? 그래서 그 맛에 계속 글 쓰게 된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만큼 단시간에 성취감을 주는 일도 별로 없거든.




아, 그리고 잠깐. 하마터면 중요한 걸 안 말하고 넘어갈 뻔했네. 개요를 안 짜면 이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이렇게 생각날 때 추가하면 되고, 아니면 퇴고할 때 추가하면 되지.


뭘 빠트렸냐 하면 개요를 짜고 쓰든 안 짜고 쓰든 간에 글을 쓰기 전에 딱 1분, 아니, 30초만 눈을 감고 당신의 SNS용 페르소나를 생각하세요. 당신이 구현하고 싶은 이상적인 당신의 모습을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나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페르소나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까. 글을 쓰다 혹시 흐름이 끊길 때도, 혹은 페르소나빨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 때도 또 페르소나를 생각하세요.


그러면 그 이미지가 글에서 차차 구현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그 페르소나가 점점 친숙해지면서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조금씩 발현되지 않겠어요? 나는 그럴 거라 믿으며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믿습니다!” 한번 크게 외치고 오늘 글쓰기 시작하시겠습니다.


이전 06화 브런치나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