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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Oct 06. 2022

글 쓰고 자빠지세요

나를 레벨업하는 페르소나 SNS 글쓰기 (5)

글쓰기는 기세예요. 인정사정 없이 밀고 나가야지 머뭇거리면 글한테 제압당해요.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고민만 하다가 완성 못 하고 포기하죠. 그렇다면 기세를 정하는 건 무엇이냐! 바로 자세지.


아니 마음가짐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거 말고 진짜 글을 쓰는 몸의 자세를 얘기할 거예요. 몸가짐이 마음가짐을 만들거든요. 연극 동호회 하면서 확실히 느꼈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내가 화를 내는 연기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무리 대사를 쳐도 분노가 부족한 거예요. 내가 원래 감정이 잔잔한 물결 같은 사람이거든요.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아요. 그래서 막 분에 차서 내질러야 하는데 마음만으로는 잘 안 되는 거야. 그때 연극을 전공한 친구가 그랬어요.


“형, 그냥 하지 말고 뭔가를 집어던지는 것처럼 팔을 한번 휘두르면서 해보세요.“


그래서 진짜 손에 뭐든 잡히는 걸 집어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대사를 쳐봤다? 그랬더니 없던 분노가 막 생겨! 진짜야. 당신도 어디 가서 성질 내야 할 땐 그냥 말로만 내지르지 말고 과격한 몸짓을 섞어주세요. 물론 어디까지나 시늉만 해야지 진짜 뭐 던지거나 누구 때리거나 하면 철창 갑니다.


여하튼 이렇게 몸가짐이 마음가짐을 만들어요. 그러니까 마음가짐 이전에 몸가짐을 정해야 해요. 글을 쓸 때도 먼저 몸으로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가 글쓰기에 좋은 자세냐? 간단해요.“글 쓰고 자빠진” 자세입니다. 응? 잘못 들은 거 같다고? 아닌데 맞는데? 글 쓰고 자빠지라고. 진짜 문자 그대로 자빠져서 쓰란 거예요.


난 그렇게 쓰거든요. 잠깐 이 글은 사정상 의자에 앉아서 쓰기 시작했는데요, 잠시만요. 자 방금 소파에 자빠졌어요. 난 평소에 이렇게 자빠져서 글을 써요. 주로 침대에 모로 누워서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폰의 그립톡을 끼우고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타이핑하죠. 지금 쓰는 폰은 아이폰13 프로고요, 기본 키보드는 제 손에 잘 안 맞는지 오타가 많이 나고 쌍자음이나 모음 쓸 때 쉬프트 누르는 것도 번거로워서 슬라이더(Slyder)라는 앱으로 간소화된 배열을 써요.


근데 이게 솔직히 인체공학적으로 좋은 자세는 아니에요. 잠깐씩은 괜찮지만 이 자세로 오래 쓰면 목이랑 어깨 작살 나요. 내가 요즘 그렇거든요. 목이랑 어깨에 무리가 오는 느낌이라 되도록 자빠져서 안 쓰고 대신 소파에 두 발을 올리고 무릎을 세워서 등을 푹 기댄 자세로 써요. 요는 편하게 늘어진 자세로 쓰잔 겁니다.


왜냐! 글쓰기가 주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서지. 글 쓰라고 하면 흔히 어떻게 생각해요? 깨끗이 정돈된 책상 앞에 등을 꼿꼿이 편 자세로 앉아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어때요? 공부하는 기분이 들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기분. 근데 학교 공부를 어느 미친 놈이 좋아해요? 아, 정말 좋아하는 미친 분들에겐 죄송. 말하자면 그렇단 겁니다. 여하튼 공부하는 거 웬만해선 싫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자세로 글을 쓰려고 하면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져서 자꾸 미루고 싶어지는 거예요.


근데 누워봐 일단 누워봐. 지금 이 글 읽으면서 누워보세요. 난 책도 누워서 보거나 엎드려서 보는 거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누워서 살아요. 그 방면으로는 내가 전문가니까 나 믿고 한번 누워봐. 어때? 편하지?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 들지? 이 상태가 글쓰기에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풀어진 상태. 그럴 때 나다운 글이 제일 잘 나와요. 글쓰기가 좀 만만하게 느껴져요.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아 물론 책으로 팔아먹기 위한 글을 쓴다, 혹은 어디 공식적으로 제출해야 할 글을 쓴다 하면 정자세로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써야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건 그냥 SNS에 올릴 글 쓰는 거잖아요. 누가 쓰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좋아서 쓰는 글. 그러니까 부담을 갖지 마세요. 더군다나 전 지금 이 글을 책으로 팔아먹을 용도로 쓰는데 그마저도 자빠져서 쓰고 있어요.


이렇게 자빠져서, 혹은 흐트러진 자세로 써버릇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바르게 앉아서 써도 마음이 편해져요. 글쓰기란 게 머릿속에 쉽고 편한 일로 각인되거든. 그러면 앉아 써도 자빠져서 썼을 때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지금 내 글 꼬라지를 보세요. 얼마나 자유로워요?




자 그러면 자빠져서 혹은 늘어져서 쓸 건데 뭐로 쓸 것이냐? 그야 당연히 폰이지. 종이에 쓴 걸 SNS에 올리려면 또 타이핑해야 하잖아. 폰이 제일 편해요. 무슨 앱 쓰냐고? 저는 율리시스(Ulysses) 씁니다. 글 쓸 때 화면에 잡다한 메뉴 없이 글씨와 키보드만 보이는 게 장점이에요. 하긴 그런 앱 많죠. 기본 메모 앱도 그렇고 폰용으로 나온 글쓰기 앱은 대체로 그렇죠?


제가 율리시스를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맥과 동기화가 되기 때문이에요. 폰에서 쓴 글을 컴퓨터에서 열어서 수정할 수 있어요. 반대도 가능하고요. 전 초고는 폰으로 쓰지만 퇴고는 주로 컴퓨터로 하거든요. 그래서 동기화가 되면 편해요. 당신도 기왕이면 폰과 컴퓨터가 동기화되는 앱을 쓰면 좋을 거예요. 아니면 드롭박스 같은 클라우드에 파일을 저장하는 방법도 있고.


응? 폰으로는 답답해서 못 쓰고 기어이 컴퓨터로 써야겠다고? 좋아요 단 조건이 있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나 한컴오피스 한글은 쓰면 안 돼. 그거 켜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어요? 일하는 거 같잖아! 마음이 긴장하잖아. 오죽하면 이름이 ‘오피스’겠냐고. 우린 지금 ‘홈’에 있잖아. 적어도 마음은 홈에 있잖아. 그러니까 오피스 쓰지 마. 그거 쓰느니 그냥 메모장을 쓰세요.


아니면 구글에서 ‘focus writing app’이라고 검색하면 앱들이 주르륵 나와요. 어떤 앱이냐면 화면에서 메뉴 막대니 뭐니 정신 사납게 하는 거 싹 다 걷어버리고 그냥 내가 타이핑하는 글씨만 보여주는 글쓰기 앱.


내가 율리시스를 쓰는 이유도 컴퓨터에서 그런 글쓰기 집중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이에요. 번역 작업할 때는 쓰는 스크리브너(Scrivener)도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에 쓰고요. 집중 모드 한번 맛들이면 못 빠져나온다?


솔직히 글 쓰는 거 아무리 자빠져서 쓴다고 해도 마냥 쉽진 않아요. 특히 초심자일 때는 더 그래. 머릿속에 뭔가 가물거리는데 그게 문장으로 잘 안 나오면 막 딴짓하고 싶어져. 일부러 딴짓거리를 찾아. 근데 말했죠? 글쓰기는 기세라고. 딴짓에 넘어가면 글을 완성 못 해요. 그러니까 화면에 집중력을 해치는 요소가 없는 게 좋지.


그러니까 폰으로 쓰는 컴퓨터로 쓰든 텅 빈 화면에 글씨만 보여주는 앱을 쓰세요. 찾아보면 무료도 많아요. 난 돈 쓰는 거 좋아해서 유료인 율리시스랑 스크리브너 쓰지만. 돈을 벌었으면 써야 돈이 돌고 경제가 살지.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 책도 많이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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