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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05. 2023

쓸데없는 글의 쓸모

쓸데없는 글 쓰기에 빠졌다. 지난달에 『일기 쓰는 법』(유유, 2021)을 쓴 조경국 작가의 문구 강연('즐겁고 슬기로운 문구생활', 진주문고)에 참석해 작은 노트를 선물로 받고 그가 추천한 입문자용 만년필(카웨코 페르케오)을 내리 다음날 산 이후 홀로 종이에 글을 쓰는 재미를 알았다.


시시로 책상에 앉아 모니터 위에 설치한 스탠드의 주황색 불빛을 받으며 조 작가에게 받은 장지갑 만한 작은 노트에 그의 추천으로 구입한 카웨코 페르케오를, 혹은 한 자루로는 아쉬워 그로부터 일주일 뒤 구입한 홍디안 920을 쥐고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 어쩌면 나조차도 보지 않을 글을 쓴다. 홀로 종이에 글을 쓰고 있노라면 내 안에서 몽골몽골 피어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쓰고 있으므로 그런 정서를 무엇으로도 가리지 않고 직시하게 된다. 의식의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것들이 덮개를 벗고 튀어 오른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의도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종이 위에 펼쳐진다.


이를 두고 만년필 수리공인 김덕래 작가는 『제 만년필 좀 살려주시겠습니까?』(젤리클, 2022)에서 이렇게 썼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펜 한 자루 손에 쥐고 흰 종이 위에 사각사각 소리 내며 뭔가 끄적이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내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조금씩 침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글쓰기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명상으로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명상과 글쓰기의 공통점은 고요함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차분히 행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홀로 자기 안으로 들어가 마음의 숲 곳곳에 감추어 있던 생각과 감정을 더듬어 발견하는 일,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거기서 또 새로운 생각과 감정의 타래를 푸는 일. 그것이 명상과 글쓰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목적이 없는 글, 곧 쓸데없는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 혹은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좋은 명상법이다. 어쩌면 눈을 감은 채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정석적 명상에 비하면 손을 움직이며 귀로 사각임을 듣고 눈으로 글씨를 좇는 글쓰기가 한결 쉬운 명상법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무시로 그렇게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게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인정하고, 표현하고 있다. 2만 원짜리 만년필 한 자루와 거저 받은 조그만 공책이 내 삶에 일으킨 반향 혹은 파문이다.



노트 / 카웨코 페르케오X대림미술관/ 홍디안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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