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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Oct 17. 2018

번역가가 되려면 꼭 에이전시 수업을 들어야 할까

부들부들 님이 댓글로 남기신 질문

(전략) 찾아보니 경력 없는 사람이 번역가로 시작할 수 있는 루트는 세 가지 정도더라구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거나, 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하거나, 대뜸 나의 샘플 번역을 출판사에 보내거나? 번역가님은 두 번째 경우를 택하셨던데 아카데미들이 서울에 있어서 저에게는 접근성이 높네요. 무리해서 서울에 있는 아카데미를 수료하거나 아니면 제가 위에 나열한 방법 외에 다른 경로가 있을까요? (후략)


답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서울에 있는 아카데미를 수료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우선 말씀하신 세 경로가 사실상 전부라고 보면 될 것 같고요, 아카데미 수강 외의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단  통번역대학원은 학생이 번역가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곳이 아마 없거나 있어도 드물 거예요. 그렇다고 출판사에 학생을 속된 말로 '꽂아줄' 수 있을 만큼 출판계에서 끗발이 있는 교수님도 없을 거고요.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출판사 관계자에게 학생을 추천해주거나 교수님의 주도로 공역 작업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적어도 제가 10년 전에 겪은 번역대학원 환경은 그랬는데 아마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더욱이 대학원은 졸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2년이란 시간과 못해도 2,000만 원 정도의 학비가 들어가는데요, 반드시 업계에서 인정받는 번역가로 만들어준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그 정도의 시간과 돈을 투입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리 효율적이진 않죠.


다음으로 출판사에 무작정 샘플 번역을 보내는 것도 별로 실효성이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출판사는 검증된 번역가를 원하거든요. 검증된 번역가란 누구냐. ①출판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번역가. ②해당 출판사가 이전에 같이 작업했고 번역 품질에 만족했던 번역가. ③신용 있는 번역 에이전시에서 나름의 선발 과정을 거쳐 영입했고 출판사에서 샘플 번역을 통해 실력을 약식으로나마 확인한 번역가. 이 외에는 어떤 분야에서 정평이 나서 그 분야의 책을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모를까, 웬만해서는 출판사에서 미지의 인물에게 일을 맡기지 않아요.


혹시 출판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알음알음 일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면 제게 질문을 하지 않으셨을 것 같네요. 만일 번뜩이는 기획력이 있다면 출판사에 외서 출간 기획서를 넣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는 외서를 발굴해서 어떤 내용이고, 장단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출간 방향을 잡고 마케팅을 하면 국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정리한 글을 보내는 것이죠. 실제로 대형 출판사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기획안을 투고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건 성공률이 매우 낮은 도전입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잘 팔릴 만한 책은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누구보다 먼저 발견해서 출판사에 소개하고 판권을 중개하거든요.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일 만한 책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설령 그런 책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출판사가 출간 결정을 내리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남아 있어요. 이 또한 출판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기획안이 채택됐다 해도 출판사에서 경력이 없는 번역가 지망생에게 순순히 일을 맡길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대학원을 나오는 것도, 출판사에 무작정 부딪혀 보는 것도 사실상 별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길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보다는 번역 에이전시의 수업을 듣는 게 '그나마' 번역계에 입성할 확률이 높아요. 번역 에이전시는 출판사와 직접 거래하며 실제로 번역을 중개하는 곳이니까요. 다시 말해 실제로 일을 줄 수 있는 곳이니까요. 물론 번역 에이전시에 들어간다고 반드시 번역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요즘은 수강생이 워낙 많아 그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그래도 에이전시는 지망생을 번역가로 만드는 체계가 확실하게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대학원보다 낫고, 출판사와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지망생이 독자적으로 출판사를 접촉할 때보다 큰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는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번역 에이전시 수업을 듣는 게 현실적으로 번역가가 되기에 '비교적' 쉬운 길 내지는 효과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이나 질문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 부들부들 님을 비롯한 번역가 지망생 여러분, 모쪼록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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