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는 보통 혼자 일한다. 그 장소는 집이 될 수도 있고 별도의 작업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혼자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종종 외롭지 않냐는 물음을 받는다. 내 경우에는 외로워 보여서 구제해줘야겠다고 나서는 사람까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자 일한다고 꼭 외로우란 법은 없다.
왜냐하면 일단 외로움이란 것도 외로울 틈이 있을 때 느끼는 것인데 번역가의 삶이 그리 한가하진 않기 때문이다. 번역가도 먹고 살려면 남들 일하는 만큼 일해야 한다.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몇 시간씩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거의 없다.
그리고 혼자 일하는 것 때문에 적적한 기분이 든다면 틈틈이 사람들을 만나면 될 일이다. 프리랜서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만큼 오전에는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의 수업을 들으러 가서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는 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직장인처럼 날마다 고정적으로 만나는 사람만 없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과연 직장에 다닌다고 외롭지 않을까 싶다. 회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사람들마저 자신과 결이 다르다면 오히려 혼자 일하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혼자 일하면 적어도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일은 없으니.
요컨대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고 꼭 외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주변에 늘 사람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번역가가 되지 않았거나 번역가가 되었더라도 금방 그만뒀을 것이다. 번역이란 게 자신의 성격을 부정하면서까지 붙들고 싶을 만큼 벌이나 대우가 좋은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마 번역가들은 대부분 혼자 일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나로 말하자면 원래 외로움을 별로 안 탄다. 그냥 혼자서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성격이다. 총각 시절에는 딱히 휴일에 할 일이 없어도 별로 지루한 줄 몰랐다. 사람 만나는 것은 가끔 친구 만나고 내가 좋아서 나가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외로움이 전혀 없진 않았다. 다만 그것은 혼자 일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 내밀한 감정을 나누고 힘이 되어줄 연인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사람을 만나서 같이 사니까 외로운 줄 모른다. (오히려 유부남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가끔 아내가 친정이나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여하튼 번역가란 직업 자체가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주변의 번역가가 왠지 외로울 것 같아서 어떻게든 구제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길. 어쩌면 그 사람은 지금 혼자 보내는 시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균형이 최적의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