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점에서 내 미래는 결정됐다. 마스다 미리의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를 집어든 순간, 나는 한국의 마스다 미리가 되기로 했다.
오늘 읽어 보니 참 별것 없는 이야기들이다. 디저트 먹고, 편의점 구경하고, 디저트 먹고, 디저트 먹은 이야기들. 알아도 딱히 쓸데없고 몰라도 아쉬울 것 없는 신변잡기의 연속.
그래서 좋았다. 요 며칠 기분이 만신창이라 진지한 것은 무엇도 싫은데 그렇게 가벼워서 좋았다. 애초에 분량도 150쪽 밖에 안 되거니와 중간중간 만화가 있어 술술 읽혔다.
마스다 미리는 만화를 그리는 글을 쓰는 작가다. 주로 일상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일으킨다. 글과 만화가 곁들여지니 쉽게 읽히고, 그래서 많이 팔린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10권 넘게 나와 있다.
나는 한국의 마스다 미리가 될 재목이다. 글은 이미 충분하다.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는 된다. 남들이 감탄할 만큼은 못 써도 의미가 명확히 전달되고 적당히 개성 있게 쓴다.
그림은 매일 그림일기로 연습 중이다. 점수를 매기자면 45점? 하지만 마스다 미리도 그림을 감탄할 만큼 아름답게 그리는 건 아니다. 적당히 선을 그어 형태만 알 수 있게 그린다. 감히 내가 점수를 매기자면 70점.
그렇다면 25점이 모자라다. 1년에 10점씩 올리면 2년 반이면 따라잡을 수 있다. 1년에 10점이면 1주에 0.2점, 매일 그린다고 치면 1일에 0.03점씩 올리면 된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그러니까 나는 수학적으로 한국의 마스다 미리가 될 운명이다.
그는 여자이고 나는 남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가벼운 글과 그림으로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책을 잔뜩 파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뭐 큰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한국, 일본, 대만, 중국에서만 팔리면 충분하다. 한류가 저 멀리 남미까지 뻗어가는 시대에 이 정도는 욕심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