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팔이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김콤마

도시에도 얼굴이 있다. 내 고향 포항의 얼굴은 단연 포스코다. 결혼 전후로 3년을 산 대전의 얼굴은 성심당. 대전역에 내려 개찰구를 나서면 튀김소보로를 사려고 성심당 대전역점 앞에 굽이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거기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성심당 본점은 바닥에 컨베이어 벨트라도 깐 것처럼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 걸음을 맞춰 빵을 고르고 계산한다.


지금 사는 진주의 얼굴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든 촉석루 일대의 진주성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진주를 대표하는 것은 토박이 서점인 진주문고다. 내가 대전에서 서울을 오가며 듣던 출판기획 강의의 뒤풀이 자리에서 곧 진주로 이사한다고 하자 선생님은 진주문고 얘기를 꺼내며 진주에는 교보문고가 들어와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지금 내가 사는 진주혁신도시에 한창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될 때 어느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현장에 대형 서점이 입점할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서점이 교보문고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정작 아파트가 다 들어서자 대형 서점 소식은 쏙 들어갔고 대신 그 근처 대형 상가 건물에 들어선 것은 진주문고 혁신점이었다. 진주문고 이전에 혁신도시에 자리 잡았던 영풍문고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의 영향 때문인지) 폐업했다. 반면에 진주문고는 코로나 시국에 3호점인 혁신점에 이어 4호점까지 신설했다.


진주문고를 진주의 얼굴이라 하는 이유는 인구 35만의 소도시에 중대형 서점 4개를 운영할 만큼 시민의 삶에 밀착해 있고 매달 저자 강연회를 열어 시민의 문화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는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고 이외수 선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고, 2022년 최대 베스트셀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황보름 작가가 방문했을 때는 얼떨결에 강연장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수성가형 작가 중 가장 성공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은 비록 현장에 참석하진 못했으나 이후 유튜브에 게시된 녹화본으로 경청했다. 황보름 작가와 이슬아 작가가 찾았던 공간에서 다음 달에는 소설가 김영하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다.




진주문고가 출판계의 간판 스타들만 초빙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인사를 끊임없이 초청해 한 달에도 여러 차례 강연회를 연다. 그렇게 진주문고를 방문한 강사 중 한 명이 펜닥터D 김덕래 작가다. 그는 다년간 만년필 수리공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제 만년필 좀 살려주시겠습니까?』를 썼다. 이 책은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서 그는 시종 말한다. 티가 안 나고 더딜지언정 뚜벅뚜벅 삶을 걸어가자고.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하필 아이들 챙기느라 가장 바쁜 시간인 토요일 오후에 강연이 잡혀서 나중에 점심거리를 사 오고 설거지할 때처럼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유튜브 녹화본을 들었다. 2시간 남짓한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만년필 수리공이 되려는 학생에게 건네는 조언이었다.


"정말 하고 싶으면 하는데 웬만하면 다른 일, 더 크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드레스룸을 개조한 골방에서 종일 작은 펜촉을 만지는 일이 자신은 좋지만 굳이 타인에게 권하고 싶진 않다는 뜻이다. 자신은 그 소박한 일에 만족하지만 기왕이면 더 큰 꿈을 꾸라는 조언이다. 그의 말은 내가 출판번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웬만하면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해도 기어이 할 사람은 하겠지만.”


종일 골방에서 남의 글과 씨름하는 이 일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남에게 권하진 않는다. 그 벌이의 ‘소박함’, 아니, 위에서는 남의 일이라 함부로 쓰지 못한 표현을 쓰자면 ‘옹색함’ 때문이다. 출판번역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생각을 활자를 유일한 단서 삼아 해석하고 수많은 단어의 조합을 계산해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겨야 하므로 종일 머리가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벌이는 그 수고에 비하면 초라하다.


나만 못 버는 게 아니다. 자기 이름으로 칼럼을 쓰고 책을 내고 종종 인터뷰에 등장하는 선배 번역가들도 번역료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 하는 것을 못 봤다. 업계의 얼굴이라 할 사람들조차 보수의 옹색함을 지적하는데 누구에게 함부로 이 일을 권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이 옹색한 벌이를 참아 내며 읽고 쓴다.




하긴 고된 노동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인색한 보상을 감수하며 밥벌이의 설움을 삼키는 노동자가 어디 번역가뿐일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항상 홀쭉한 주머니에 남는 것은 낙담이다. 그러고 보면 요 몇 년 사이에 N잡 열풍이 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본업만으로는 형편이 크게 나아지질 않으니 이런저런 일로 수입원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나도 N잡러라면 N잡러다.


번역이 주수입원이지만 저작으로도 돈을 벌고 싶어 꾸준히 글을 쓴다. 노력과 운이 맞아떨어져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냈다. 그러나 내 글로 돈을 벌기는 남의 글로 벌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도 쓴다. 요즘은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매일 그림 연습도 쉬지 않는다. 이 모든 수고의 목적은 내 이름을, 결국엔 내 얼굴을 독자와 출판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찾고 내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꼭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누구든 뜯어먹을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일만 하든 여러 일을 하든 상관없이 업계 사람들이, 혹은 소비자가 나를 알고 찾게 만들어야 한다.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 조직생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프리랜서로 15년을 살면서 보니 돈 되는 일은 그 바닥의 간판, 즉 얼굴이 팔린 사람에게 몰린다. 그러니 우리는 팔릴 만한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얼굴은 심성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얼굴은 몸값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여하튼 우리는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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