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보다 강한 게 펜이라지만 펜보다 강한 게 우리 첫째 아가ㄹ…… 아가의 입이다. 입에 따발총을 달았다는 말을 피부로 느낀다. 총알이 푸슝푸슝 내 귀를 벌집으로 만든다. 아이는 장난감이나 TV에 집중할 때를 빼면 쉴 새 없이 말한다. 아니다. 장난감을 갖고 놀 때는 상황극의 감독 겸 주연이 되어 내게 끊임없이 대사를 요구하고, TV를 볼 때도 수시로 뭔가를 설명해주거나 묻고 동의를 요구한다. 그렇게 종일 떠든다. 탄창은 무한이다.
그래서 주로 어떤 말을 하는가 하면…… 기억이 안 난다. 왜냐하면 대체로 실속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내뱉는다. 순식간에 관심사가 바뀌기 때문에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고 자꾸 화제가 바뀐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원하는 정보는 철저히 은폐한다. 유치원에서 오늘 뭐 했냐고 물으면 딴청을 피우거나 "비밀!”이라는 것이다.
나는 또 그 실속 없는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준다. 폰을 보면서 건성으로 말하지 않고 성실히 답한다. 아이가 무시당한다고 느끼지 않고 세상에 언제든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을 느꼈으면 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길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라 생각한다. 독립은 육아계의 일타강사, 오은영 박사가 말하는 양육의 목표다.
그러나 나의 이 숭고한 뜻을 실현하는 과정이 쉽진 않다. 나는 잡담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심점이 없는 대화는 재미가 없고 허탈하다. 어떤 주제를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자리, 가령 독서 모임 같은 건 좋다. 하지만 모임 후 술자리는 딱 1시간 정도만 버틸 만하다. 어느 한 점을 겨냥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발사되는 무수한 말의 향연이 자꾸만 나를 달아나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의 입에서 무한히 나오는 총알을 맞노라면 마음이 따가워진다. 그나마 평일은 괜찮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에 적막한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말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말에 그 수다를 다 듣고 있자면 가슴 저 밑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칠 때가 있다. 그러면 “말 좀 그만해!”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니면 아이의 총구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그만하라고 빌고 싶어 진다.
하지만 아이는 그 심정을 이해 못 한다. 아빠 좀 쉬고 싶으니까 말 좀 그만하라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는 그 새를 못 참고 “그러면 이따 무슨 얘기할까?”라고 또 종알거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도리가 없다. 그냥 순순히 그 총알을 맞는 수밖에. 가슴이 너덜너덜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