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노동법 위반

by 김콤마

아내도 나도 서로가 떠나주길 소망한다. 애들 데리고 어디 가서 한 일주일쯤 지내다 오기를. 조용한 집에서 애들 없이 푹 쉬는 게 소원이다. 어디 나가면 짐도 싸야 하고 아무래도 몸에 익지 않아 불편하니까 아늑한 내 집이어야 한다.


학생에게는 방학이 있고 직장인에게는 휴가가 있지만 육아인에게 그런 것은 사치다. 육아는 연중무휴다. 매일 눈 뜨면 애들 아침부터 챙겨 먹여야 하고 오후 4~5시면 어김없이 애들이 돌아온다. 그나마 평일은 사정이 낫다. 주말에는 등원조차 하지 않으니 종일 애들과 부대껴야 한다.


업보라고 해도 좋겠다. 아이를 낳은 데 솔직히 이기적인 이유가 없지 않았으니까. 아내와 둘이서만 살면 적적할까 봐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고 하늘이 우리 삶에서 적적함을 완전히 빼앗아가 버릴 줄이야. 살 좀 빠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예 피골이 상접해버린 격이랄까. 진심으로 딱 일주일만 적적했으면 좋겠다.


동요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나나나 나나나나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아이들은> 中) 이 노래를 쓴 사람은 아마도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거나 이미 너무 오래 돼서 그 기억을 잊은 사람일 것이다. 아이들이 “잠시” 없어져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종종 부모가 바라는 바다. 물론 어떤 나쁜 일을 당한 게 아니고 잘 있다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을 때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노랫소리야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자리를 어른들의 콧노래가 대신 채울 테니까.


나도 그렇게 콧노래가 절로 나온 적이 있다. 둘째가 태어나기 한참 전 일로, 아내가 아이와 친정에 며칠 더 있을 테니 먼저 집에 가라고 했다. 마치 축지법을 쓰듯 한달음에 터미널로 달려가서 날렵하게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 후 집 근처 터미널에 내렸을 때는 먼 하늘에 어느새 주황빛 노을이 져 있었다.


그것은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문득 보는 노을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서 애 밥 먹여야지”라고 계시하는 노을이 아니라 “오늘 저녁은 모처럼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홀짝이는 게 어때?”라고 제안하는 노을이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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