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겐 같이 놀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편하다. 아니면 또 쫓아다니면서 놀아줘야 한다. 안 놀아주면 놀아 달라고 징징대니까 그 소리 듣기 싫어서 놀아줘야 한다. 그것도 다 노동이다. 재미없는 일은 모두 노동이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압력솥에 들어간 갈비처럼 육신이 흐물흐물해지는 무더위 속에서도 첫째는 기어코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둘째야 첫째가 놀면 저도 무조건 놀아야 하는 애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그 날씨에. 그때 풀숲에서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산책 중인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비둘기다!”
그 말 한마디에 첫째가 수풀로 향하고 둘째도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 비둘기는 애들이 다가오자 뒤뚱뒤뚱 작은 나무 뒤로 숨었다. 아직 동물 이름이 헷갈리는 첫째는 “갈매기야, 어디 있니?”라며, 그리고 아직 어지간한 단어는 앞글자만 말하는 둘째는 “비! 비!”라며 비둘기를 찾았다. 고맙게도 게으른 비둘기는 날아가지 않고 계속 아이들을 피해 숨었다. 그렇게 한동안 숨바꼭질 아닌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비둘기도 아이들과 노는 게 버거웠던지 이내 무거운 날개를 휘적이며 떠났다. 왠지 긴 한숨도 내뱉은 것 같았다.
그러고도 첫째는 더 놀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달렸고 둘째는 아빠가 미는 유모차로 형을 추격했다. 그 여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세 남자가 남들은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쉬는 시간에 달리고 또 달렸다.
그날은 워낙 더운 날이라 그랬다고 해도 요즘 놀이터에는 우리 때만큼 애들이 많지 않다. 내가 유치원생이던 80년대에는 밖에 나가면 항상 동네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는 차가 많이 안 다녔으니 그냥 길가에서 놀고, 동네에 몇 개 없는 놀이터에 가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같이 놀 친구가 안 보이면 친구네 집 문앞에서 “OO아, 노올자”라고 부르면 됐다.
하지만 요즘은 길바닥에서야 당연히 못 놀고 놀이터는 아파트 단지별도 있어서 온 동네 애들이 북적이는 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유치원생인 첫째 또래들도 하원하면 다 어딜 가는지 놀이터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도 같은 유치원에 다니거나 부모가 친한 애들끼리 노는 분위기다. 잘 안 나와서 잘 못 보니까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원래 친하던 애들끼리만 노는 것이다.
우리 애처럼 허구한 날 놀이터에서 노는 애도 드물다. 그런데 다행히 그 드문 애가 같은 단지에 한 명 더 있다. 마침 같은 유치원 같은 반 친구다. 그래서 둘이서 허구한 날 논다. 지겹도록 논다. 집에 들어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떼쓸 정도로 논다. 그런데 둘째는 아직 그런 친구가 없다. 아니, 애초에 친구와 논다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나이다. 그러니까 또 내가 붙어서 놀아줘야 한다.
나도 놀고 싶다. 그냥 혼자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