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공부는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번역가가 되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할까>와 마찬가지로 역시 번역가 지망생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답은 간단하다.
번역을 많이 하세요.
번역가들 사이에서 번역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번역문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아무 소용없고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로든 손으로든 써야만 결과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번역도 글쓰기이고 글 솜씨를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글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실제로 써볼 때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머릿속에서는 앉은뱅이도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게 만들 것 같았던 문장이 막상 써보면 부끄러워서 주저앉고 싶은 문장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글 좀 써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머리로 생각만 할 때는 내 진짜 실력을 모른다. 실제로 해봐야만 내 수준을 알고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번역한 문장의 수와 번역 실력은 정비례한다. 번역문이 쌓일수록 번역 실력이 는다.
물론 사람마다 출발점이 다를 수는 있다. 가령 지금까지 살면서 똑같은 분량의 번역문을 만들었지만 A가 B보다 누가 봐도 번역 실력이 뛰어날 수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무슨 일이든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남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더욱더 번역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번역에 대한 지침서가 도움이 되는 것도 직접 번역을 해보고 내 한계를 느꼈을 때다. 직접 번역하면서 답답하게 느끼고 고민했던 부분이 있어야 지침서를 보고 “아,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깨닫고 기억해놓았다가 나중에 쓰게 된다. 반대로 그런 “아하!”의 순간이 없으면 책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고 당연히 실전에서도 전혀 활용되지 않는다(참고로 번역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 지침서는 ⟪번역의 탄생⟫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싸움을 책으로만 배우는 것과 같다. 가령 “상대방이 2미터 전방에서 달려올 때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후 상대가 당황했을 때 무릎을 펴는 추진력으로 날아올라 오른손으로 복부를 가격한다. 이때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라고 외치면 스피드왜건 효과로 파괴력이 배가된다”라는 설명을 읽었다고 치자. 이때 실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아, 그렇구나’라며 넘어갈 것이다. 머릿속에 실전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와도 활용이 안 된다. 하지만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제압당한 경험이 있다면 머릿속에 저 기술로 상대방에게 역공을 가하는 장면이 그려지며 책의 내용이 각인된다. (참고로 저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으니 사용하지 마세요. 싸움은 나빠요.)
여하튼 일단 스스로 번역을 해봐야 타인의 조언도 효과를 발휘한다. 번역이란 밭을 갈지도 않고 조언이란 씨앗을 아무리 뿌려봐야 싹이 틀 리 없다.
나도 번역가가 되기 전에 직접 번역을 하면서 번역을 공부했다.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대항마로 부상하고 있었다(지금은 구글 크롬에 완전히 밀려버렸지만). 파이어폭스는 익스플로러와 달리 제3자가 만든 ‘확장 기능’이란 소프트웨어를 브라우저에 설치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지금은 대부분의 브라우저가 지원한다).
나는 그때 수많은 확장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로 번역해 올리는 웹사이트를 운영했다. 일부 확장 기능은 직접 한국어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확장 기능을 제작하기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XUL을 익혀서 확장 기능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XUL 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올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5년 2월호에 <LiveLInes로 시작하는 파이어폭스 확장 기능 개발>, <파이어폭스 확장 기능 베스트5>라는 기사를 기고했다. 생애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번 경험이었다.
당신도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무엇이든 번역을 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 실력은 실제로 번역을 해야만 길러진다. 번역 지침서를 볼 때도 예문을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러저러하게 번역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실제로 컴퓨터에든 종이에든 번역문을 써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저자가 제시하는 답과 비교하면 배울 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솔직히 나도 예문은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고 넘어간다. 근데 나는 지망생이 아니라 번역가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글솜씨는 타인에게 내 글을 보여줄 때 가장 빨리 향상된다. 타인을 의식하면 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타인의 비평을 통해 고쳐야 할 부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자신이 번역한 글을 웹에 올리자.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의 글을 번역해서 다른 덕후들과 공유하면 서로 좋다. 나도 파이어폭스가 좋아서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번역했다.
거기에 더해 번역 스터디에 들어가든, 번역 수업을 듣든, 번역 대학원에 진학하든 간에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고 동료나 전문가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더욱 좋다. 어지간한 의지가 있지 않은 한 ‘번역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연습하지’ 하고 넘어가기 십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과제로 제출해야 하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같이 번역하는 사람들의 평가가 보통은 더 정확하고 유익하다.
자, 그럼 됐다. 번역가가 되고 싶으면? 오늘부터 하루에 단 100자, 500자씩이라도 번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