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일도 병행하다 보니 저녁이면 기운이 하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멍한 날들이 반복되자 점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무기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기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게 만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력은 기다린다고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건 내가 잘하는 것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못 그려도 좋으니 다시 나 자신과 연결되기를 바랐습니다. 장면을 구상하고, 그 장면을 화면 위에 펼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순간마다 내 안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무기력에서 벗어났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만큼은 나는 분명히 설레는 사람이고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설렘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림이 나를 설레게 하지 않을 날도 오겠지요. 하지만 그땐 또 다른 무언가가 나를 다시 두근거리게 해줄 거라 믿습니다.
두근거림을 잃지 않는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