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로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게 오역 논란이에요. 수많은 독자에게 지탄받는 상황이 무서워요. 다행히 지난 17년 동안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모르는데 어떻게 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번역으로 논란이 되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에요.
오역 논란이라고 하면 기억나는 책이 뭐가 있으세요? 전 두 권이 바로 떠올라요. <스티브 잡스> 한국어판과 <채식주의자> 영문판. 이 두 책이 왜 논란이 됐을까요? 둘 다 화제의 책이었거든요. <스티브 잡스>는 출간 당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요, <채식주의자> 영문판은 원래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렸죠.
오역이든 뭐든 번역으로 논란이 되려면 먼저 책 자체가 그만큼 화제가 돼야 해요.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로요. 제 역서 중에 그런 책이 있냐고요? 없습니다. 제가 번역가라고 하면 흔히 "뭐 번역하셨어요?"라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말하죠. "어차피 말해도 잘 모르실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말해보세요." 그래서 그나마 잘된 책들 말하면 예, 잘 모르세요. 17년 동안 50권 넘게 번역했는데 진짜 어디 가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팔린 책이 한 권도 없어요. 그러니까 제 번역은 논란이 되려야 될 수가 없죠.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논란이 돼요.
*이 글은 언급된 두 책의 번역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