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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알면서도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쓰는 이유

by 김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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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를 읽다 보면 유독 딱딱하고 부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이 나와요. 변명 같겠지만 그게 꼭 번역가의 실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거든요. 원문의 한계라는.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원문에 매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알고도 못 쓸 때가 있죠.


제가 이번에 번역한 문장이에요.


I'm disadvantaged because of my gender and my race.


그대로 옮기면 "나는 성과 인종 때문에 불리하다"입니다. 딱딱하죠? 만일 제가 저자였다면 "나는 여성이고 흑인이라서 불리하다"라고 썼을 거예요(실제로 저자는 흑인 여성입니다). 그게 더 부드럽게 읽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번역가니까 함부로 그렇게 쓸 수 없어요. 저자가 '여성', '흑인'이라고 쓰지 않고 '성', '인종'이라고 쓴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쎄요, 그 의도를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어쩌면 아무 의도 없이 무의식중에 그렇게 썼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저자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안 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번역가가 마음대로 고치긴 어렵습니다. 내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이니까요.


번역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정말 많아요. 더 좋은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문의 특성 때문에 그러지 못할 때가요. 물론 언제나 원문의 표현을 다 살릴 수는 없겠죠. 문장에 따라, 저자나 책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 해요. 그래도 저는 일단 원문의 표현을 되도록 살리는 쪽을 지향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좀 많이 잡아먹는 편이에요. 어쩌겠어요. 꼬우면 내 글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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