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디드로의 행동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나를 사면 다른 것까지 사게 되는 경향은 흔하다. 이런 행동을 가리켜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디드로 효과는 새로운 것을 사게 되면 추가 구매가 일어나 소비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묵상

몇 달 전에 애플 펜슬을 선착순 50명에겐가 반값에 파는 이벤트가 있어서 미친 듯이 새로고침을 한 끝에 득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애플 펜슬을 쓸 수 있는 아이패드가 없었어요. 일단 펜슬부터 사고 본 거죠.

그러고서 아이패드를 사려니 그 돈이면 애 분유가 몇 통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외국 사이트에서 새것 같은 중고 아이패드 6세대를 반값에 팔길래 얼른 샀습니다. 받아보니 사용 흔적도 없고 활성화된 지도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기기라 이런 걸 산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뭐 하나 사면 그것 때문에 다른 걸 또 사게 되는 걸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는군요. 그러고 보면 이번에 아이패드를 산 것은 2010년에 아이폰4를 산 것에서 시작된 디드로 효과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폰을 산 후 2011년에 맥미니를 사고, 2년마다 아이폰을 최신 모델로 바꾸는 와중에 2015년에 맥미니를 아이맥으로 교체하고 2016년에는 맥북을 사고 이번에 아이패드를 삼으로써 거의 완벽한 사과 농장을 꾸린 거죠. 아내가 쓰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미니까지 합치면 집에 애플 제품이 총 6개네요.

제가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니멀한 하드웨어 디자인, 미려한 글자 표현, 편리한 연속성 기능 때문입니다.

애플 제품은 디자인이 다 비슷하죠. 일단 두께가 얇은 직육면체 형태에 모서리는 적당히 굴곡을 줍니다. 전면에 드러나는 버튼은 아예 없애거나 하나 정도만 남겨놔요. 후면이나 측면에 넣는 버튼과 포트도 일부 사용자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욕을 먹을 정도로 최소화합니다. 그리고 상판이나 등짝에 쓸데없는 문구는 다 빼고 자사 로고만 큼지막하게 박아버리죠.

전 이렇게 단조로운 디자인이 너무 좋아요. 그냥 성격이고 취향이죠. 집도 그렇게 단순하게 해 놓고 살고 싶지만 정리하는 게 귀찮기도 하거니와 아내와 철학이 맞지 않아 적당히 어질러 놓고 사는 게 늘 아쉽습니다.

다음은 글자 표현인데요. 대학교를 중퇴한 후 캘리그래피 수업을 청강한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만들 때 글자가 아름답게 표현되도록 심혈을 기울인 건 유명하죠. 맥은 예전부터 글자의 윤곽선을 부드럽게 처리해서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가 인쇄물에 찍히는 활자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윈도우는 글자가 선명하게 표시되는 대신 활자보다 거친 느낌이 있었죠. 저해상도 디스플레이 시절에는 맥의 표현 방식 때문에 영어 알파벳보다 복잡한 한글은 다소 흐릿하게 표시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고해상도 시대에 들어서는 말끔히 해결됐습니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종일 텍스트를 봐야 하는 저는 아직도 제 눈에는 글자가 투박하게만 보이는 윈도우보다 책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맥으로 작업할 때 훨씬 일할 맛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스러운 연속성은 A기기에서 하던 일을 복잡한 조작 없이 B기기에서 바로 이어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폰에서 사진을 찍으면 알아서 아이패드나 맥에도 저장되고, 맥에서 보던 웹사이트를 이동 중에 아이폰에서 손쉽게 열어서 볼 수 있는 거죠.

이번에 산 아이패드도 초기 화면에서 아이폰을 가져다 대라길래 그렇게 했더니 애플 아이디니 와이파이 비번이니 입력할 필요 없이 필수적인 정보와 설정값이 자동으로 복사돼서 마치 예전부터 쓰던 기기처럼 편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한번 익숙해지고 나니까 안드로이드와 윈도우는 은근히 불편해서 못 쓰겠더라고요. 아무리 클라우드로 비슷하게 구현 가능하다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걸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도 귀찮아서요.

이런 이유로 저는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계속 애플 생태계에 머물 것 같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애플 제품에 큰돈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는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쓸 만한 성능이고 아이폰도 나온 지 3년쯤 된 모델이지만 카메라 화질이 성에 안 차는 것만 빼면 여전히 쌩쌩해서요.


애플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기도

아이폰에 통화 녹음 기능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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