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살 많은 인생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요즘와서 어디선가 '구김살 없이 자랐다, 컸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어휘에 대해서 문득 저도 모르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중략) 최근에도 누군가를 만났고 보아하니 구김살이 없어보였습니다. (중략) 인생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하나의 투쟁... 누군가에게는 인생은 즐길거리가 가득한 행복...
—빙탕후루, <'구김살 하나없이 컸네' 라는 말이 요즘 실감이 됩니다>​, 클리앙



묵상

저는 구김살이 많은 사람입니다. 별 이유도 없이 으레 사람들이 날 싫어할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 하나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겠죠. 다만 어릴 때 사소한 사건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서 뭔가를 보고 있길래 저도 무슨 일인가 해서 뒤에 붙어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한 여자애를 건드렸던가 봐요. 걔가 뒤를 돌아서 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딱 한마디 하더군요.

“못생긴 게!”

그 한 번의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만 저는 20대 때까지 제 외모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했어요. 내가 접근해봤자 안 좋아할 거라고, 아무 근거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요.

다행히 제게 먼저 접근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렇게 친해지면 또 곧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남이 먼저 내게 다가와주길 바라니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죠.

제일 문제는 연애였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존감이 지구핵까지 쭉 내려가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말도 잘 안 나오고 연락은 감히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근처나 빙빙 돌뿐이었죠. 덕분에 그 좋은 시절에 변변한 연애 한 번 못 했습니다.

그런 제게 변화가 일어난 건 딱 서른 살 때였어요. 서른 살에 저는 연극 동호회 활동과 요가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서른이 됐다고 특별히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다짐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연극과 요가, 요가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명상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극복하도록 유도한다는 거죠.

연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 성격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마음속에서 어떤 충동, 욕구가 일어나는데 그것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재다가 결국엔 행동할 시기를 놓칠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연기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즉각적으로 표출해야 관객이 볼 때 진짜처럼 느껴지죠.

명상을 통해서도 내가 머리로 많은 것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계산적으로 살고 있었던 거죠. 내 이익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남들에게 미움받을 가능성을 계산하며 몸을 사렸던 거예요. 그나마 그 계산도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게 아니니 엉터리였죠.

그렇게 연극과 명상으로 내 한계를 깨닫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연기를 하면서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하는 법을 익혔고 명상으로 내 안에서 딱딱하게 굳고 긴장된 부분을 풀어준 덕분이죠.

그 결과로 저는 그 해에 연애를 시작합니다. 소개를 받고 딱 3번 만난 후 과감히 사귀자고 해서 흔쾌한 승낙을 받아냈어요.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은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서른 즈음에야 구김살을 조금씩 폈습니다. 진작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전까지 힘들었던 세월이 후회스러워요. 쓸데없이 주눅이 들어서는 내 안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나와 투쟁하며 산 시간들 말이죠.

그런 후회가 있다 보니 우리 아이는 최대한 구김이 안 가게 키우고 싶습니다. 살면서 괴로운 일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쓸데없이 구겨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아빠 때문에 그러진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아이에게 불쾌한 감정이 들 때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하려 합니다. 아이가 말은 못 해도 아빠, 엄마의 감정은 얼추 느끼는 것 같아요. 아빠가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혹시라도 자기는 나쁜 아이라고, 혹은 아빠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느껴서 기가 죽을까 걱정이 돼서 이성으로 감정을 다스립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건 내 전문인데요? 머리로 마음을 억누르는 거요. 그런 태도가 내 인생을 방해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쓸모가 있군요. 이상하게 아이 앞에서는 잘 안 되지만 말이지요.


후. 부정적인 감정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으려고 하면 도 닦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육아 선배인 친구 말로는 이제 지옥문이 겨우 1센티미터 열린 거라는데, 별 수없죠, 사리 생길 때까지 닦아보는 수밖에요.


기도

우리 애는 제가 못 살아본 잘생긴 남자의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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