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가 엎드려서 고개를 까딱 들고 있어. 그래야 관심받을 수 있으니까.
—아내, 모 아동재단 광고를 보고
또 육아 얘기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최대 과업이다 보니 자꾸 얘기하게 되네요.
어젯밤에 자려는데 아내가 그러더군요. 부모가 되니까 애들을 보는 마음이 예전과 다르다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 아동재단 광고를 봤는데 지금 7개월인 우리 억돌이보다도 작은 아기가 엎드려서 고개를 까딱 들고 있더래요. 보육원에서 교사 1명이 네댓 명씩 아이를 맡다 보니 관심을 받으려고 그 어린 나이에도 필사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거라네요. 그리고 억돌이 만한 아기들이 이유식 먹을 때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린대요. 자기가 관심이든 밥이든 독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벌써 알아버린 거죠.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애를 키워보니까 그게 얼마나 슬픈 건지 알겠어요. 저희 억돌이도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만 그 방법이 달라요. 왜 나 안 봐, 하고 소리를 빽 질러요. 그건 필사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냥 신경질이고 투정이죠. 배고프면 기다리고 자시고 없어요. 밥 내놓으라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배 부르면 안 먹겠다고 또 시위를 합니다.
원래 애들이 그러는 거잖아요. 근데 그걸 못 하는, 이미 어린 나이에 체념을 알아버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쓰러운 거예요.
아내에게 둘째는 입양할까, 라고 가볍게 물었습니다. 아내도 저도 막연히 입양이 좋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입양을 해야겠다는 의지나 각오는 없어요.
입양을 하면 좋은 점이 있죠. 첫째, 임신해서 고생할 필요 없다. 여기서 고생은 저의 고생을 말합니다. 그거 열 달을 또 어떻게 수발을 들어요. 둘째,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 첫째는 아들이니까 둘째는 딸이면 좋겠어요. 근데 임신하면 내가 선택 못 하잖아요.
하지만 입양이 두려운 이유도 있습니다. 내가 과연 그 아이를 아빠답게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전 요즘은 좀 참을성이 강해지긴 했어도 가끔 억돌이한테 저도 모르게 버럭 신경질을 내요. 아마 애가 나이 들어서도 그럴 거예요. 그렇게 생겨먹은 아빠니까요. 만약에 입양을 한다면 분명히 그 아이한테도 그러겠죠. 근데 그럴 때 내가 그 아이를 미워하거나 짐으로 여기면 어쩌나 싶어요. 억돌이야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홧김에 그런 마음이 들어도 금방 사라지지만 내가 안 낳은 아이에게도 그럴지 솔직히 모르겠네요.
그리고 입양한 아이가 덜컥 큰 병이라도 걸리거나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그걸 과연 내가 낳은 아이에게 같은 일이 생겼을 때와 똑같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괜히 입양했다, 얘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 라고 후회하진 않을지.
근데 또 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고민하고 말고를 떠나서 입양을 하고 말고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요. 10년 전쯤에 어느 종교인에게 물었어요. 제가 볼 때는 세상이 참 살기 힘들고 인생이란 게 대체로 행복보다는 고통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때 그분이 그랬습니다. 애가 태어나고 말고는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하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요. 나한테 태어날 애면 태어나겠고 아니면 아닐 거라고요.
입양도 마찬가지겠죠. 우리한테 올 운명인 아이가 있으면 오겠고 없으면 안 오겠죠.
애 낳기 전에는 아내한테 셋은 낳자고 했는데 막상 낳아보니까 하나로도 너무 힘들어서 둘째도 낳을까 말까 고민입니다. 애 좀 편하게 키우게 돈을 주시든 체력을 주시든 좀 도와주세요. 둘 다 주시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