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Jul 19. 2019

글쓰기 레벨4가 되기 위해 미친 듯이 썼습니다

젊은 번역가의 공부 습관 (2)

<젊은 번역가의 공부 습관>이 새로운 제목으로 2020년 4월 11일 출간될 예정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텀블벅 펀딩 바로 가기




“번역가는 영어(원어)보다 한국어를 잘해야 해요.”


종종 듣는 말입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갑니다. 한국어로 쓰였지만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번역문에 지쳤다는 말이지요.


번역은 기본적으로 읽기와 쓰기가 결합된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번역가는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잘 써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어디서 글 좀 쓴다는 소리는 들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글솜씨를 계량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편의상 레벨 1~5로 나눠보죠. 레벨 5가 만렙입니다. 번역가가 되려면 레벨이 몇이어야 할까요? 레벨 3이면 중간 정도니까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레벨 4는 돼야 합니다. 번역을 할 때는 레벨이 1씩 깎이거든요. 글솜씨가 레벨 4는 돼야 번역문은 레벨 3 정도 수준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화 ⟪드래곤볼⟫ 아시나요? 저처럼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아재라면 필독서로 보셨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목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여기에 거북이 등딱지를 매고 다니는 무천도사라는 무술의 고수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손오공이 천하제일무술대회를 앞두고 이 무천도사에게 수련을 받을 때 종일 거북이 등딱지를 매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등딱지 때문에 손오공은 제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고생하죠.


번역가의 처지가 딱 그렇습니다. 항상 원문이라는 등딱지를 매고 있어야 해요. 원문의 구조와 표현이 일단 머릿속에 들어오면 번역문을 쓸 때 거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거죠. 번역서에서 어색하고 불편한 문장이 종종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손오공은 수개월 후 등딱지를 벗고 엄청나게 강해진 힘을 느낍니다. 유감스럽게도 번역가는 원문을 벗어던지고 “사실은 이것이 나의 풀파워다!”라고 외칠 수 없어요. 그랬다가는 천하제일오역대회에 강제 출전입니다. 이렇게 ‘풀파워’를 발휘하지 못하니까 글솜씨가 상급은 돼야 번역문은 간신히 중급에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나오죠.




그렇다면 글솜씨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글을 많이 쓰면 됩니다.


제가 2002년부터 몇 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썼던 글 중 일부가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데요, 지금 확인해보니까 2003년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약 240편의 글을 썼네요. 어림잡아 하루에 1.3편의 글을 쓴 셈입니다.


그때는 글쓰기에 살짝 미쳤던 것 같아요. 하루는 조깅을 하다가 내리막길에서 발을 잘못 디뎌서 주르륵 미끄러졌어요. 일어나니까 오른쪽 무릎이 다 까져서 피가 철철 나더라고요.


그러고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세요? ‘이걸 블로그에 어떻게 쓰면 재미있게 쓸 수 있을까?’ 아니, 무릎에 피칠갑을 하고 절뚝대면서 속으로는 ‘오예, 큰 건 하나 건졌다!’라고 쾌재를 부르다니 이게 제정신입니까. 방금 무릎을 까보니 그때 생긴 흉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군요.


그 시절에 그렇게 글을 써댄 게 번역가가 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열심히 원서를 읽던 때와 얼추 시기가 겹치네요. 대학교 다니고 공익 근무 하던 때라 그만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죠.




이제부터 글을 써보시겠다고요? 좋습니다. 그러면 글쓰기에 입문할 때 흔히 하는 고민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보죠.


Q. 글은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요?

A. 블로그에 쓰세요.


일기장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쓸 수도 있지만 일기장은 아무런 피드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금방 재미가 없어지고, 커뮤니티는 내 글이 수많은 글 속에 파묻혀서 금방 존재감을 잃습니다.


반면에 블로그는 댓글이나 좋아요 같은 형식으로 피드백이 들어오고 내 글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됩니다. 혹시 아나요? 출판사에서 번역가를 선정할 때 블로그에 쓴 글들이 유리하게 작용할지. 더 좋은 것은 출판사에서 블로그를 보고 저서를 출간하자고 하는 것이겠죠.



Q. 어느 정도 빈도로 쓰는 게 좋을까요?

A.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쓰세요.


원서 읽기도 그렇고 뭐든 꾸준하게 해야 늡니다. 일주일에 1번씩 90점짜리 글을 쓰는 것보다 이틀에 1번씩 50점짜리 글을 쓰는 게 좋아요. 점수를 합치면 전자는 한 달에 360점, 후자는 750점이죠? 실제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그 정도 차이가 납니다. 매일 써야 감각이 길러져요.


소설가 김연수,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뭔 줄 아시나요? 글이 잘 써지든 안 써지든 무조건 매일 꼬박꼬박 쓰라는 겁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Q. 분량은 어느 정도로 쓰죠?

A. 10문장 이상으로 하시죠.


제가 볼 때는 최소 10문장은 써야 기승전결이 있는 완결된 글이 나옵니다. 물론 서너 문장으로도 기가 막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걸 ‘촌철살인’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런 기술은 하루 아침에 터득되지 않아요.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 못 올랐습니다.


10문장이면 1문장에 1분씩 쓴다 하면 10분이면 다 쓸 수 있는 분량이에요. 문장마다 고심하며 5분씩 쓴다 해도 1시간이면 다 쓸 수 있으니까 큰 부담이 없죠.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쓰면 될까요?

A.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쓰세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솔해야 한다는 겁니다.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 양념을 치는 거야 괜찮지만 뻥을 치면 다 티가 나요. 그리고 뻥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꾸준히 지속할 수는 없어요.


다른 하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써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는 괜히 뭔가 있어 보이려고 무게 잡지 않잖아요. 잘 보여야 한다고 부담감을 느끼지도 않고요. 글 쓸 때도 멋있어 보여야 한다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쓰세요. 그래야 지치지 않습니다.



Q. 소재는 어떻게 정하죠?

A. 뭐든 괜찮습니다.


전문 분야나 관심 분야에 대해 써도 되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나 떠오른 생각에 대해 써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일상사를 다룬 글보다는 어떤 한 분야를 파고드는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는 쉬울 거예요. 하지만 어지간히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한 일주일에 3번씩 그런 글을 쓰기에는 글감이 충분치 않을 겁니다.


일단은 글을 많이 써서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니까 소재에는 신경 쓰지 말고 뭐든 쓰세요. 일기도 꾸준히 쓰면 보러 오는 사람이 생깁니다. 혹시 가능하면 일주일에 전문성 있는 글 1편과 일상적인 글 2편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미리 개요를 작성하고 써야 하나요?

A. 백지 상태에서 바로 써도 무방합니다.

글을 쓸 때 서론, 본론, 결론에 무엇을 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를 작성해 놓으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꼭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냥 아무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써 내려가도 괜찮아요. 그렇게 쓰고 나서 다시 읽어봤을 때 그냥 공개해도 되겠다 싶으면 바로 공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다듬으면 되죠.


그리고 미리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글을 쓰기도 전에 지쳐버릴 수 있습니다. 또 글이란 게 항상 계획 대로 써지진 않고 그때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 때문에 갑자기 방향이 틀어져버리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니까 미리 개요표를 작성하는 게 반드시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Q. 아무 준비도 없이 쓰려니까 막막한데요?

A. 그럼 마인드맵을 만들어보세요.


마인드맵이란 간단히 말해 의식의 흐름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기록법입니다. 빈 종이나 화면의 중앙에 주제를 쓴 다음 그와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편의상 새끼 생각이라 하죠)을 그 주변에 쓰고, 또 거기서 파생된 새새끼(?) 생각을 옆에 적는 식으로 생각의 지도를 그리는 거예요.


이때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가하지 않고 되도록 그대로 적는 게 중요합니다. 브레인스토밍과 비슷하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실제 예를 보면 이해가 잘 되실 테니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작성한 마인드맵을 보여드리죠.


마인드맵


저는 지금처럼 긴 글을 쓸 때는 일단 이렇게 마인드맵을 작성한 후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써내려 갑니다.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또 계획에 얽매여 불현듯 드는 생각을 놓치게 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죠. 그리고 내가 무슨 내용을 쓸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니까 글을 쓰면서 느끼는 막막함도 줄어듭니다.



Q.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쓸까요?

A. 취향 대로 하세요.


뭐든 순차적으로 앞의 것을 완성해야 뒤의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라면 한 문장을 몇 번씩 고친 후에 다음 문장을 쓰셔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끝까지 다 쓴 다음에 다듬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공들여 쓰면 나중에 다듬는 시간이 줄어들 겠죠. 하지만 자칫하면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질리거나 지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합니다. 이 글만 해도 절반은 처음부터 고심하며 썼고 절반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빠르게 쓴 후에 나중에 갈아엎다시피 고쳐 썼습니다. 물론 항상 그렇게 갈아엎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Q. 다 쓰고 나서 보니까 형편없어요.

A. 원래 그래요.


글이란 건 백 번을 보면 백 번 다 부족하고 고칠 부분이 보여요. 그러니까 초고는 얼마나 마음에 안 들겠어요. 오죽하면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을까요.


아마 글을 보는 눈이 좋아질수록 자기 글이 더욱 못마땅하게 보일 거예요. 근데 그건 내가 내 글을 잘 아니까 그런 거예요. 남들은 나처럼 내 글을 속속들이 뜯어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Q.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기가 어려워요.

A. 그럼 앉지 마세요.


꼭 책상에서 글을 쓸 필요 없습니다. 어디든 편한 데서 쓰세요. 예를 들면 거실 소파에서 노트에 글을 쓰고 나중에 컴퓨터로 옮겨 적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저는 요즘 가볍게 쓰는 글은 침대에 누워서 아이패드로 씁니다. 누워서 쓰면 마음이 느슨해져서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서 좋아요.


집에서 글이 잘 안 써지면 밖으로 나가세요. 공원도 좋고 지하철도 좋고 카페도 좋습니다. 바깥에서 글이 더 잘 써질 수도 있어요.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가족과 집안일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데 밖에서는 그런 것을 잊을 수 있잖아요.




자, 정리해보죠.


글솜씨를 키우려면 이렇게 하세요.


1. 블로그에 쓴다.


2. 일주일에 3번 이상 쓴다.


3. 최소 10문장씩 쓴다.


4. 준비 없이, 부담 없이 편하게 쓴다.


이렇게만 하면 몇 달 후 분명히 글솜씨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을 겁니다. 글쓰기는 정직한 행위입니다. 쓰는 만큼 늡니다. 제가 해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블로그는 어디가 좋을까요?

글을 쓰기에는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가 최고입니다. 과장 좀 보태서 요즘 인터넷에서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은 다 모여 있어요. 출판사에서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주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글 잘 쓰는 사람, 글 많이 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도 잘 쓰고 많이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깁니다. 그게 꾸준히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될 거예요.

딱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심사를 거쳐야만 글을 발행할 자격이 생긴다는 겁니다. 기존에 출간된 저서나 역서가 있다면 바로 통과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을 써서 제출한 후 합격 통보를 기다려야 해요.

일단 한번 도전해보시고 안 되면 우선은 진입 장벽이 없는 다른 블로그를 이용하다가 나중에 다시 도전해 보세요.



이 글은 좋은 습관 연구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심풀이로 원서를 읽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