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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Nov 21. 2018

엄마라서 안돼요

일과 양육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오래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면접을 보던 때였다. 딸이 겨우 네 살쯤 되었을 때지만, 결혼 전부터 임용 준비를 했던 터라 욕심을 내서 학교에 지원했다.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 입고 들어선 교실에는 다섯 명의 선생님이 면접관으로 앉아 계셨다. 각 분야의 부장교사쯤 되어 보이는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듯 질문을 건넸고, 면접 분위기는 내일 당장 출근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좋게 흘러갔다. 적어도 그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교에 나오게 되면 앞으로 아이는 누가 돌보죠?"



  흰머리가 제법 풍성해진 남자 선생님께서는 면접의 끝자락에 이 질문을 던졌다. 학교에도 잔업이나 회식이 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가능하겠냐는 말. 선생님의 경험에서 나온 질문인지 선입견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에 있어 가족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서럽다 못해 화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차분히 웃음을 띠며 아이를 돌봐줄 분이 계셔 일하는 데 지장은 없을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직감했다. 

  '떨어지겠구나'

  대기실에서 만난 유일한 다른 면접자가 자신은 미혼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이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그 어느 쪽도 믿고 싶지 않은 결과를 듣고는 잠시 헛헛한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금 더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 후로 7년 여가 지났다. 남편과 둘째 아이가 잠에 들고, 딸과 단 둘이 남은 밤. 딸이 식탁에 앉아 책을 읽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난 크면 아기를 안 낳을 거야. 사회시간에 저출산 문제에 대해 배웠는데, 아기 낳기가 무서워졌어. 아기 낳는 것도 위험하고, 난 바둑기사가 되고 싶은데 아기가 있으면 대국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가 없잖아. 회사에서도 엄마보다 아빠들을 더 좋아한대. 아빠들한테도 아이가 있는데 왜 그러지?"

  그러더니 자기 꿈을 위해선 아무래도 혼자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단다.


  변한 게 없었다. 여자에게 일과 양육은 여전히 선택의 고뇌에 빠져들게 하는 어려운 문제였다.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에는 우리나라 여자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여성들이 나온다.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덴마크 여성들이다. 그들은 깊게 신뢰할 만한 보육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오후 4시면 퇴근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이것은 아빠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 육아나 가사에서 남편은 이방인이 아니며, 아이들도 집안일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그들의 가정은 엄마의 희생이 아닌 협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게 덴마크 여성들은 하루 평균 6시간의 여가시간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아이들은 대부분 8시경에 잠든다)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힘들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여의치 않은, 어린아이를 두고 엄마가 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이런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변화 중이라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쯤이면 결혼의 모습도, 양육의 방식도, 세상도 많이 바뀔 테니 벌써부터 걱정하지는 말라고. 


  다음 날 딸이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그거 알아? 여자들은 죽도록 노력하면 남자들이 하는 거 다 할 수 있어. 근데 남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가 하는 것 중에 딱 하나는 절대 못해. 뭔지 알아?"


  그 날 딸과 나는 그 답에 대한 긍지를 느끼며, 아빠와 남동생은 모르는 자부심을 공유했다.


  딸이 어른이 될 때까지 약 10여 년. 그땐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이유로 여자가 사회에서 탈락되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한다. 가정의 행복과 사회적 성취를 모두 욕심내어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나의 아이들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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