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아기를 재우고 컴퓨터를 하다가 가까운 문학관의 시 특강 안내문을 보았다. 시는 잘 몰라도 시집은 늘 끼고 다니는 편이라, 신춘문예 특강이라는 제목을 보고도 무작정 수강신청을 했다. 어차피 글쓰기는 한 그릇 아니겠나 하는 무모한 생각이었다.
수업 신청을 하고 일주일을 설레었다. 1년 만에 듣는 문학 강의인 데다 무엇보다 혼자 외출할 수 있지 않은가! 요즘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차고 넘쳐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시 강의는 좋은 기회였다. 아빠의 육아 능력을 향상시키고, 엄마의 정신적 빈곤을 채워 줄 절호의 기회.
허나 정작 수업 당일이 되자, 일주일 내내 일하고 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게 미안해져 고민 고민하다 수업 시작 5분 전에야 문학관에 도착했다. 서둘러 나오느라 노트 한 권 챙겨 나오지 못했지만, 온갖 책임감을 남편에게 넘겨주고 나온 기분이란 미안한 마음도 훌훌 날려버릴 정도로 상쾌했다.
나는 가볍게 2층 계단을 올라 강의실에 다다랐다. 커다란 시 특강 포스터가 붙여진 문학관에서 가장 넓은 강의실이었다. 그곳은 30대부터 50대까지 나이가 무색하고 성별이 무의미한, 시에 매료된 이들로 가득했다. 모두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작가 지망생들이었다.
실로 충격적인 시간을 보냈다. 작은 동네의 시 강의라고 하기엔 방대한 그들의 지식에 놀랐고, 시 강의의 자유분방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강의실 누구도 묻고 답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것은 엄마 배 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맞이한 세상처럼 놀랍고도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수업 중 날아오는 시인의 질문들은 나의 부족함을 낱낱이 드러나게 했지만, 강의는 그런 부끄러움을 떠올릴 겨를도 없을 정도로 농축되어 흘러갔다. 혼자 좋아서 시를 읽고, 써 오던 나에게는 동경해도 좋을 만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수업에 푹 빠져있을 때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데리러 갈까?”
고마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마음을 흔들어댔다. 이 매혹적인 풍경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남편의 문자를 받고 서둘러 강의실을 나왔다. 멀리 남편이 보였다. 남편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기를 안고 차 뒤편에 서 있었다. 오는 동안 꽤나 보챈 모양이었다. 나는 아기를 안고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딸이 냉큼 물었다.
"엄마, 애기 없이 나가니까 좋았어?"
딸의 질문에 죄책감이 불쑥 튀어나왔지만, 나는 태연한 척 답했다.
"수업에 아기를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근데 강이랑 너 보고 싶어서 혼났어.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보고 싶더라."
딸은 나의 대답을 듣고 싱긋 웃더니, 이제 아무 상관없다는 듯 아빠와 보낸 시간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수업을 듣는 2시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다녀왔다. 처음이었다. 남편이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내가 남편의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용기가 난 건지 기저귀 찬 아기를 데리고 마트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힘들었단 말 대신 마트에서 사 온 먹을거리들을 식탁 위에 꺼내놓았다. 내일 김밥을 만들 거라며. 자신이 얼마나 알뜰하게 장을 봐 왔는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가 즐거워 안도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큰 일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은 엄마가 없는 시간을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 두었다.
문득 가족이란 이렇게 서로의 빈자리를 구석구석 채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아닌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 비록 하루이지만 그렇게 남편도 딸도 엄마의 빈자리를, 엄마를 위해 잘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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