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남의 꿈을 빌렸으면 사용료를 내야될 거 아닙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는데 꿈을 조금 더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꿈 대출자들 덕분에 오늘도 시간이 연장되었다.
‘이야.. 이 정도 시간이면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도 남지. 남아!’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이득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제 이 일도 그만둘 때가 됐나. 그래, 이 많은 시간을 언제 다 쓰겠어. 그만하고 편히 쉬자고!’
그때였다.
똑. 똑. 똑.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방문자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쭈뼛쭈뼛하며 두리번거렸는데, 깃털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꿈 대출했던..」
[아! 구해조님, 기억합니다. 근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제가 대출했던 꿈 말이에요. 한번 더 빌릴 수 없을까요?」
[아이고 이걸 어쩌죠. 형평성을 위해 반납한 꿈은 다시 대출이 불가한데 모르셨나보네요. 그리고 사업을 곧 그만두려고 합니다.]
「네? 사업을 그만.. 하시겠다구요? 저는 사장님만 믿었는데 이제와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그러게 그때 다 해결하셨어야지요. 사업이라는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저라고 뭐 앞날을 미리 알겠습니까?]
실망한 고객은 잠시 생각하다가 은밀한 손짓으로 제안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부탁하면 안될까요. 사용료를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모을 필요가 없어요. 쓰기도 바쁘거든. 다른 드림캐쳐들도 있으니 그쪽에 가서 알아보든가 하십쇼.]
고객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소리쳤다.
「내가 꿈을 대출하면 사장님부터 찾아갈테니 긴장하는게 좋을겁니다!!」
조금 찜찜했지만 두고보자는 놈들은 다 허풍쟁이라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꿈 정리를 하고, 바쁘게 고객관리를 했던 평소와는 달리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바로 이거야! 무슨 부귀를 누리겠다고 꿈 장사에 매달렸는지 몰라. 근데 앞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똑. 똑. 똑.
《편지왔습니다.》
[간만에 평화로운 아침을 보내나 했더니 무슨 편지야!]
터벅터벅 걸어가 문을 열자, 바닥에 편지봉투가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보낸이: 드림캐쳐 본사
*본인 외 개봉금지*」
[어디보자...]
《드림캐쳐 〇〇점장님, 안녕하세요.
추운 겨울,
메마른 가지처럼 앙상했던 사장님의 모습..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저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그 순간..
마치 어제처럼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그때보다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기회를 준 보람이 있어 뿌듯하네요.
그런데, 곧 사업을 그만두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원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쉽기도 하지만 매우 서운하군요.
그래도 이해는 합니다. 간절했던 마음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니까요.
그럼..
마무리를 위해 정산을 시작하도록 하죠.》
‘뭐야? 이게 끝이야?’
끝맺음이 없는 편지가 꺼림칙 했지만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 편지를 꾸겨넣었다.
‘하암.. 좀 더 잘까.. 피곤하네.’
아침부터 찜찜한 편지를 받아서일까.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졸음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둥~ 둥~ 둥~’
몸이 솜털처럼 가벼운 느낌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두리번거리다 무심코 아래를 보는데
[말도 안돼!!]
발밑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름이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꿈인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구름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스프링처럼 위로 튕겨졌다.
‘으.. 머리 아파. 여긴 또 어디야?’
잠시 정신을 잃다 눈을 떴을 땐 드넓은 초원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구원자가 있었다. 시간의 흔적인지 구원자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게 변한거 같았지만 그래도 해맑은 표정은 여전했다.
「사장님, 오랜만이죠? 편지는 잘 받으셨나요?」
[구원자님, 오랜만입니다. 근데 제가 여기 왜 와 있는지..]
「곧 사업을 그만두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정리를 해야지요.」
'가만,, 근데 내가 구원자에게 사업을 그만둔다고 말한적이.. 있었나?'
[아..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꿈도 별로 없고, 힘이 들어서요.]
「그렇군요. 사장님네 꿈이 좋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아쉽게 됐네요.」
[근데.. 무엇을 정리하면 되는거죠?]
구원자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사장님, 당연히 위약금을 지불하셔야지요! 사업을 그만두시면 저희쪽에도 손해가 막심하거든요.」
[위약금이요? 예전에는 그런 말 없으셨는데.. 뭐 좋습니다. 저도 도움 받은게 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요. 얼만큼 드리면 됩니까?]
구원자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크크큭 사장님이 그동안 벌어드린 사용료의 두 배 어때요?」
[두 배.. 라구요?]
「네. 지난번에 제시한 사용료를 거절하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사장님에게 제안해보는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죠? 언제 저한테 제안을?!!]
「제가 다시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사장님!」
갑자기 구원자의 모습이 허물처럼 벗겨지더니 깃털이 보였다.
[설마 당신.. 구해조씨?]
「잘 못 알아보시는 걸 보니 성공했네요! 다른 드림캐쳐에게 꿈을 사왔거든요!
저는 이제 드림캐쳐의 심장이 되었어요. 예전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드디어 구원자가 되었다구요!!」
구해조는 광기 어린 미소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꿈을 샀다니요? 우린 꿈을 빌려주는거지 팔지 않아요. 남의 꿈을 소유할 수 없다고요.]
「그러니까요! 그게 문제였어요! 매번 대출하고 반납하고 사용료 지불하고, 얼마나 귀찮아요? 그냥 원래 꿈주인을 없애고, 꿈을 완전히 가지면 돼요!! 엄청나죠?」
[뭐라구요? 그럼 구원자님은.. 어.. 어떻게..]
「예전의 구원자는 없어요. 이제부터는 구해조의 드림캐쳐라구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하자마자 머릿속의 영사기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더니 경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방향을 잃어 한참을 헛돌고 있는 기억의 나침반은 구원자를 처음 만났을 때로 안내했다.
추운 겨울, 그때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사장님, 꿈으로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겁니다.》
손을 내밀어 준 구원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꿈 장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구원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저 꿈 관리를 잘하라고 조언했을 뿐.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고객들.’
‘그들이 지불한 영혼의 시간들.’
‘온기가 남아있던 구원자의 손.’
모든 것이 허망하게 스쳤다.
멍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우스워보였는지 구해조는 웃음을 참은 채 입을 땠다.
「사장님, 구질구질하게 시간 끌지말고 사용료를 어서 지불하고 끝내죠. 이제 더 이상 꿈도 없으시잖아요. 크킄」
그동안 꿈이 필요한 고객들에게 악착같이 받아냈던 ‘사용료’.
써보지도 못한 그 시간들이 파도에 휩쓸려 가듯 구해조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머니에 꾸겨넣었던 편지봉투의 문구가 아른거리며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드림캐쳐!
《구직자를 위한 꿈의 일자리! 꿈을 빌려주고 영혼의 시간을 받는 낭만적인 직업!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립니다! 몽상가 여러분, 지금 바로 기회를 잡으세요!!》
출처: unsplash
*글 쓰는 몽상가 LEE의 메시지:
저는 꿈을 자주 꾸는데 독자님들은 어떠신가요?
드림캐쳐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준다고 해요.
좋은 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만약 나눠줄 수 있다면 제가 아끼는 사람들(물론 독자님들께도!)에게 좋은 꿈을 나눠주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구해조' 처럼 악용하면 안되겠지만요!
:-)
오늘도 몽상 인사이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