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가능성'의 함정

멈출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by 글쓰는 몽상가 LEE


Q. 다음 세 사람은 어떤 점이 비슷할까?



1. N년차 공시생 A씨

"지금까지 해온 공부가 아까워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조금만 하면 붙을 거 같아요."

출처: unsplash



2. N년 차 무명배우 B씨

"주위에서 저의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알아봐 주는 작품만 만난다면 좋을 텐데."

출처: unsplash



3. 도박중독자 C씨

"내가 한방에 몇백만 원도 딴 사람이야! 잭팟 곧 터진다니까."

출처: unsplash






공시생 A는 미래의 공직자가 될 가능성

무명배우 B는 유명한 스타가 될 가능성

도박중독자 C는 잭팟이 터져 부자가 될 가능성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현재의 상황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잠재력이 터지기만 한다면, 대박 나서 인생역전 되는 건데...'


일말의 희망을 놓지못하는 상태랄까.

잠재된 가능성은 때론 스스로를 속이며 현실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는 도전정신이 있음을 대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허송세월 보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길을 걸으면 된다지만 그건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정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눈도 중요하다.

도전도 시도도 좋지만 '시간은 유한'하기에 목표달성의 한계가 느껴질 때, 지금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N년차 공시생 A 같은 경우,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시험을 위한 과목만 준비했는데 공시를 포기하는 순간 공들인 시간은 물거품이 된다(안타깝게도 시험과목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부와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등장하는 공시생이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늪에 빠지는 거 같아. 아까워서 더하고 아까워서 포기를 못하고, 계속 이 길을 가자니 붙을 거라는 확신도 없고 포기하자니 그동안 해왔던 게 아깝고. 조금만 더 하면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야, 5년 10년 노력한걸 누가 알아줘. 노력도 결국 붙어야 인정을 해주는 거야. 안 붙으면 우린 다른 사람들 눈에 노력 덜 한 애 밖에 안돼."


어쩌면 공시생 A에게 잠재된 가능성이란, 물거품이 돼버려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으로 인해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위태로운 동아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 방송에 무명배우가 출연했었다. B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단편영화와 연극에 출연한적은 있지만 오디션으로 캐스팅 된 경험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력에 부족함을 어느 정도 인지하는듯 했으나 '끌어주는 선배가 없어서, 아직 기회가 없어서'라며 힘들어했다.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살아가려면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취업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쉽게 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본인조차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위에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캐스팅 되고 싶으면 오디션도 직접 찾아다니면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 오디션을 찾아야할 지 모르겠다'며 기회가 우연히 찾아오길 바라며 버티는 것은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명배우 B에게 잠재된 가능성이란, 지금껏 버텨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 A, B씨와는 다르게 C씨는 중독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으로 보아야 겠지만 '가능성에 중독된' 심리를 중점으로 든 예시이다.


도박중독자 C씨는 인생한방을 노리면서 매일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다.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 억 원까지. 대부분 도박의 끝은 재산탕진이다.


카지노에 방문하는 사람은 다양하겠지만 의외로 성실하고 꾸준히 일 해왔던 전문직이나 사업가들이 많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도박중독에 취약한 것은 '뭐든지 열심히 해서 성취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했던 이들은 실패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한번 돈을 잃기 시작하면 불타는 승부욕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도박에 중독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박장에 있는 순간 돈을 완전히 잃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박장에서는 게임을 하면서 돈을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잭팟이 누구에게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잠재된 가능성에 중독되어 슬롯머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큰 수의 법칙 때문에 카지노를 이길 수는 없다.


도박중독자는 도박장을 나오는 순간, 모든 돈을 탕진한 빈털터리가 돼버린 실패자의 느낌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딸 확률보다 잃을 확률이 많음을 알고 있음에도 매일 카지노에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도박중독자 C씨에게 잠재된 가능이란, 대박과 위험성을 동시에 지닌 러시안룰렛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잠재된 가능성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간절한 희망은 소망으로 이어지지만 지나치면 벗어날 수 없는 집착과 중독으로 변할 수 있다.


가능성도, 희망도 좋지만 현실을 직면해서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멈출 수 있는 것'도 큰 용기이고,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잠재된 가능성을 계속 끌고간다면 우리는 정작 눈앞의 또 다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는다는 건 '끝' 혹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것을 채워 넣기 위한 비움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keyword